진짜 아빠를 찾아주세요 (제 1 동화집)

2008.02.15 04:11

홍영순 조회 수:1240 추천:189




             진짜 아빠를 찾아주세요

                                          

상쾌한 오월 아침 남촌 파출소 입니다.
아침햇살은 유리창에서 반짝이고, 라일락 꽃향기는 파출소 안에까지 들어왔어요. 숙직을 한 강순경이 휘파람을 불며 커피를 끓이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남촌 파출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침부터 나쁜 사건 소식인가 하여 강순경은 좀 퉁명스레 전화를 받았어요. 그런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어요.  
"경찰관아저씨세요? 우리 아빠를 찾아주세요."
"너는 어디 사는 누군데 아빠를 찾아달라고 하니?"
"저는 모란아파트 나동 107호에 사는 송나리고요, 여섯 살이에요."
“집에는 아무도 없니?”
“집에 가짜 아빠가 있어요. 어젯밤 내가 잘 때 까지 우리아빠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니 우리아빠는 없고 가짜 아빠가 있어요.”
“가짜 아빠?”
"예. 나쁜 마술사가 우리 아빠를 마술상자에 가둬놓고 와서 자기가 우리 아빠래요."
“엄마는 어디 계시는데?”
“우리 엄마는 내가 두 살 때 하늘나라로 가셨대요.”
강순경은 여섯 살짜리 나리 전화에 당황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나리가 울기 시작했어요.
"나리야, 왜 우니?"
"무서워요. 저 나쁜 마술사 아저씨 잡아가고 우리 아빠를 찾아주세요. “  
파출소 소장님이 출근을 하다 강순경이 나리와 전화로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강순경, 마술사가 뭘 어쨌대?”  
“마술사가 나리 아빠를 마술상자에 가둬놓고 자기가 아빠라고 한대요.”
파출소 소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강순경에게 말했어요.
“강순경이 나리 집에 가 보게. 어린 아이가 파출소에 전화를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강순경은 잠시 망설였어요. 할일이 많은데 아침부터 여섯 살짜리 아이의 황당한 말을 믿고 찾아가야 하니까요. 그러다 강순경은 자기의 딸 여섯 살배기 아람이를 생각했어요. 지난겨울 아람이가 창 밖에 도깨비가 온다고 밤중이면 울면서 아빠엄마의방으로 오곤 했어요. 그래서 아람이 방에서 밤새 지켜보니 도깨비가 아니고 옆집 고양이였어요.  
“나리네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들은 가끔 엉뚱하기는 해도 거짓말은 안 하거든요. 나리네 집에도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여기는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말고 빨리 가보게. 어린 애가 운다면서?"
파출소 소장님도 귀여운 다섯 살짜리 손녀를 생각하며 강순경을 재촉했어요.  

강순경이 아파트에 가보니,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어요. 파마머리가 어깨를 덮고 눈이 초랑초랑한 귀여운 아이였어요.
"네가 송 나리니?"
"예. 제가 송나리에요. 아저씨는 아까 그 경찰관이세요?"
“그래, 그런데 왜 밖에 나와 있니?”
"무서워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강순경이 나리네 아파트 문을 열자, 나리는 강 순경 뒤에 숨어 얼굴만 조금 내밀었어요. 집안은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있고, 거실 벽에 나리를 가운데 앉히고 엄마아빠가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어요. 강순경이 집안을 둘러보자 나리가 강순경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저기 화장실에 가짜 아빠가 있어요.”
강순경이 화장실 문을 열자 숨이 막힐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났어요. 나리가 가짜 아빠라는 남자는 잔뜩 토해놓고 그 옆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남자는 거실 가족사진속에 있는 나리 아빠와 똑같이 생겼어요.
“저 사람은 네 아빠잖아.”
“아냐요. 저 아저씨가 마술을 부려 아빠처럼 하고 왔다니까요.”
강순경은 퀴퀴한 냄새를 참을 수 없어 코를 막고 남자를 흔들어 깨웠어요.
“어떤 놈이야?”
남자는 욕을 하며 돌아누웠어요. 나리가 겁에 질려 울면서 말했어요.
“아저씨, 저 가짜 아빠를 잡아가고 우리 진짜 아빠를 찾아주세요.”
“너희 아빠하고 똑 같이 생겼는데 진짜 너희 아빠가 아니니?”
“우리아빠는 술 안 먹어요. 그리고 우리아빠는 절대로 욕하지 않아요. 저 아저씨는 우리아빠가 아니고 나쁜 마술사라니까요.”  
“넌 마술사를 봤니?”
“예.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상자에 꽃을 넣었는데 새가 되었고요, 큰 나무상자에 여자가 들어갔는데 남자가 되었어요.”      
강 순경이 물을 한바가지 퍼서 남자의 얼굴에 끼얹었어요.
“에이 취!”
남자가 재치기를 하며 눈을 뜨더니 강 순경을 보고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어떻게 오셨죠?”
"나리가 불러서 왔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자가 강 순경 등 뒤에 숨어 있는 나리를 보았어요.
“나리야!”
“......”
나리는 대답은 안하고 방으로 도망쳤어요. 남자가 물을 퍼서 토해놓은 것을 씻어 내며 말했어요.
“잠시 나가 계시겠습니까? 제가 대강 씻고 나가겠습니다.”
강순경이 거실로 나오자 나리가 다시 강 순경 등 뒤로 숨었어요.
“당신 이름이 무엇이요?” 남자가 씻고 나오자 강순경이 물었어요.
“송현욱입니다.” 남자는 공손히 대답했어요.
“송나리 라는 아이를 아십니까?”
남자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어요.
“저 아이 말입니까? 저 애는 제 딸인데요.”
“나리는 당신이 아빠가 아니랍니다. 당신은 나쁜 마술사인데 아빠를 어디다 가둬놓고 와서 아빠라고 거짓말 한대요. 주민등록증 봅시다.”
남자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좌우로 몇 번 더 흔들었어요.
“주민등록증을 보자고요?”
“예.”
남자는 전날 밤에 입었던 냄새나는 옷을 다 찾아보고 가방도 열어봤지만 주민등록증이 없었어요.
“분명 어젯밤 주머니에 넣었는데...”
“아무래도 당신이 이상하니 같이 파출소에 갑시다.”
강순경이 일어나자, 남자가 당황하며 나리를 불렀어요.
“나리야, 송나리! 이리 와 봐.”
나리는 울며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갔어요.
강순경이 남자의 팔을 잡고 집 밖으로 나왔어요.
“나리야, 아빠 금방 올게!” 남자의 목소리가 떨리며 눈물이고였어요.
주차장으로 가던 강순경이 남자에게 말했어요.
“당신을 나리아빠라고 증명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저기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에 가면 되는데......”
“그럼 그 교회로 가봅시다.”
“안돼요. 어떻게 목사님에게 술 먹은 이야기를 합니까?”
“그럼 경찰서로 갑시다.”
강순경이 남자의 팔을 잡아당기자, 남자가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어요.
"교회로 가겠습니다."
“그 교회는 저도 압니다. 목사님 댁이 교회당 안에 있으니 가 봅시다.”
“......”
강순경이 남자를 데리고 교회로 갔어요.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아니, 어떻게 강순경님이 교회까지 오셨나요?”
목사님과 강순경이 인사하는 동안 남자는 외면을 하고 반쯤 돌아서서 있었어요.
“예, 목사님 저 사람을 아시나요?”
그제야 남자가 목사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어요.
“송 선생님이요? 알고말고요. 우리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신데요.”
“목사님! 저희들이랑 나리한테 가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리가 어디 있는데요?”
“집에서 진짜 아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자가 목사님 앞으로 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어요.
“목사님, 어젯밤 술이 마술을 부렸습니다.”
목사님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어요.
“송 선생님, 그 못된 마술사를 기도실에 가둬놓고 오시겠어요?”
남자가 예배당에 들어간 후, 기도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어요.
“목사님, 저사람 나리 아빠가 맞지요?”
“예, 술에 질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나리 엄마는 어디 있습니까?”
“나리가 두 살 때 교통사고로 하나님께 갔어요.”
“나리 말이 맞네요. 그럼 송 선생님은 재혼을 안 했습니까?”
“나리에게 아빠엄마 노릇을 해야 하니까 재혼을 못한대요.”    
  
남자가 기도실에서 나오자, 강 순경과 목사님이 나리 아빠를 데리고 아파트로 갔어요.
“나리야, 아빠 오셨다.”  목사님이 문을 두드리며 나리를 불렀어요. 나리가 창문으로 내다봤어요.
“나리야, 아까 그 나쁜 마술사 아저씨는 경찰서에 가두고 너희 아빠 찾아왔어.” 강순경이 말하자, 나리가 아빠를 부르며 뛰어나왔어요.
“아빠, 어젯밤 무서웠지? 나리한테 전화하지. 그럼 내가 구하러 갔잖아.”
아빠가 나리를 번쩍 안으며 말했어요.
“어젯밤 나리 많이 무서웠겠다. 미안해.”  
“응, 나쁜 마술사 아저씨가 술 먹고 아빠라고 해서 정말 무서웠어.”
“미안해. 나리야 ! 이제 다시는 우리 나리 무섭게 안할게.”
아빠가 나리를 품에 꼭 안고 눈물을 글썽이자, 나리가 아빠에게 뽀뽀를 했어요. 목사님이 나리를 보며 빙그레 웃더니 말했어요.
“송 선생님 강 순경님이 오셨는데 차 한 잔 안 주시렵니까?”
“예, 어서들 들어오세요.”
목사님과 강 순경이 들어가자, 나리가 쪼르르 부엌으로 달려갔어요.
“아빠, 차 끓여야지. 아빠가 물 끓여, 내가 국화차 가져올게.”
아빠는 찻물을 끓이고 찻주전자와 찻잔을 준비했어요. 그동안 나리는 국화차와 과자까지 상에다 차렸어요.
“나리야, 다음에도 나쁜 마술사가 아빠라고 하거든 파출소에 연락해라. 내가 잡아다 혼내 줄 테니까.”
강순경이 씽긋 웃으며 말하자. 목사님도 뻥긋 웃으며 말했어요.
“나리야, 이제 다시는 마술사가 오지 않을 거니까 걱정마라.”
목사님과 강 순경이 마주보며 “하하하, 허허허!” 웃으며 차를 마셨어요. 나리 아빠는 손으로 머리를 쓱쓱 쓸어 넘기며 고개를 숙였어요.
나리가 과자 하나를 집어 아빠 입에다 쏙 넣어주고는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말했어요.      
“아빠, 사랑해!”
“나도 나리 사랑해!”
아빠도 커다란 팔로 하트를 만들며 말했어요.
목사님과 강 순경도 엉성하게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웃었어요.

그날 밤, 나리가 잠들자, 나리아빠가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거짓말을 하셔서 어떻게 하죠?”
“나도 지금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잊지 마세요. 나리의 진짜 아빠는 술도 안 마시고 욕도 안한다는 걸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둥그런 오월 달이 나리네 집을 슬며시 들여다보며 환하게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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