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공원의 크리스마스(제 1 동화집)

2010.01.21 05:46

홍영순 조회 수:980 추천:163

                조각공원의 크리스마스

                                                 홍 영 순

      
“쿠-쿠루-쿠쿠 데데뽀뽀, 쿠-쿠루르르 데데뽀뽀!"
한나절이 되도록 사람하나 없는 조각공원에 산비둘기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뒷산 비둘기가 찾아와 조각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는 소리입니다.  
"기쁜 소식이 있니?"
조각천사가 산비둘기를 반갑게 맞으며 물었어요.
“내일이 크리스마스라 세상구경 하고 왔어요.”
“세상은 어때?”
“세상은 온통 크리스마스트리로 반짝이죠. 선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보이고요.”  
“그럼 더 구경하지 왜 벌써 왔니? 이 조각공원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천사님 옆에 있고 싶어서 왔어요.”    
“고맙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조각공원이 쓸쓸하구나.”
“오늘은 다른 조각들도 모두 쓸쓸하대요. 해마다 관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공원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시고 캐럴도 들려주셨는데 올해는 할머니가 아프셔서 못했잖아요.”
"할머니가 오늘 퇴원하신다고 했지?"
"예. 좀 전에 할아버지가 할머니 퇴원시키려고 병원에 가시는 것 봤어요."
"할아버지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조각들을 돌보실 텐데 걱정이구나."
“관리실 할아버지는 유명한 조각가라며 어떻게 여기 계시게 됐어요?”
“우리 조각공원은 아주 유명한 조각 공원이었어. 처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왔지. 우리나라 최고 조각가들의 예술품들이었거든. 그 중에 나를 조각한 분은 바로 관리실 할아버지야.”
“와아! 관리실 할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조각가시군요. 천사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진짜 천사 같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왜 사람들이 구경하러 안 오지요?”
“십년 후 다른 곳에 더 크고 화려한 조각공원이 생기자 사람들은 다 그리로 몰려갔어. 결국 우리조각공원은 관람객이 없어 문을 닫게 되었지. 그때 날 조각한 지금 관리실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털어 이 조각공원을 사고 아예 관리실로 이사를 오신거야. 그 후 17년 동안 할아버지가 우리 조각공원을 지키셨어.”
“요즘은 구경꾼이 주말에나 몇 사람 오니 관리비는커녕 전기세나 나오겠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직접 관리하시는 거야. 정말 고마운 분이야. 그런데 조각들은 이 공원을 좋아하나 모르겠다.”
“아뇨. 수십 년 동안 꼼짝도 못하고 구경꺼리만 되는 게 싫대요. 그중에도 분수대에 빨가벗고 서서 오줌만 싸는 남자애는 너무 창피하대요. 여자애들이 구경 오면 킬킬거리며 놀리거든요.”
“나도 답답한데 조각들도 그렇겠지.”
“꼭 하루만이라도 진짜 사람이 되고 싶대요.”
“나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진짜 천사가 됐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기도하셨다면서 아직 한 번도 천사가 못 되어보셨어요?”
“내 가슴이 따듯해지면 진짜 천사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작년 크리스마스에 진짜 천사가 와서 말해줬어.”  
“아이 참, 대리석 조각이 어떻게 가슴이 따듯해져요? 그 말은 절대로 천사가 될 수 없다는 뜻이죠.”
“아니야, 내가 가슴이 따듯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천사가 못되는 거야.”
“알았어요. 나는 천사님을 믿으니까요.”
금방이라도 눈이 오려는지 잿빛하늘이 땅에까지 닿았어요.        

“비둘기야 눈이 온다. 저것 봐. 눈이 오고 있어!”
조각천사가 눈이 온다고 좋아하자, 산비둘기가 목을 잔뜩 움츠리며 말했어요.
"정말 눈이 오네요.”
“눈이 오면 네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싫으니?”
“눈이 오면 추우니까요.”
“정말이니? 그럼 내 날개 밑으로 들어와.”
“새가 천사님 품으로 들어가도 괜찮아요?”
“그 천사라는 말 그만하고 내 품으로 들어와. 난 네가 추운 게 싫다.”
“천사님, 감사합니다.”
산비둘기가 조심스레 조각천사의 오른쪽 날개 밑으로 들어갔어요.
조금 후 까마귀가 날아와 조각천사 발밑에 앉았어요. 까마귀는 날개의 눈을 털며 말했어요.
“눈이 오는데 천사님은 춥지 않으세요?”
“까마귀야, 너도 춥구나?  어서 내 품으로 들어와.”
“아유, 아니에요. 그냥 여기 천사님 발밑에 있을게요.”
“어서 와. 벌써 비둘기도 내 품속에 있어.”
“저는 까만 새인데 어떻게 천사님 품으로 들어가요?”
“까맣다고 누가 뭐라고 했어? 넌 까만 새라서 아주 예뻐!”
“다들 까맣다고 싫어하는데요?”
“넌 까만 새라 예쁘다니까. 아무걱정하지 말고 어서 내 품으로 들어와.”
“고맙습니다. 천사님!”
까마귀가 쭈뼛거리며 조각천사의 왼쪽 날개 밑으로 들어갔어요.
“재 재 재......”    
이번에는 한 떼의 멧새가 날아왔어요.
“너희들도 춥겠다. 내 품으로 들어와라.”
조각천사가 다정하게 멧새들을 불렀어요.
“우린 너무 많은데요?”
“괜찮아. 너희들은 작아서 얼마든지 내 품으로 들어 올 수 있어.”
멧새들이 재재거리며 조각천사 품으로 들어가는데, 아까부터 소나무 속에서 엿보고 있던 직박구리가 날아왔어요.
“직박구리야, 너는 안 돼.”
까마귀가 직박구리를 밀어내며 호통을 쳤어요. 그러자 멧새들도 쏘아붙였어요.
“넌 날마다 천사님을 놀렸잖아.”
“맞아, 아무것도 못하는 가짜 천사라고 놀린 게 누군데?”
“참 뻔뻔하구나. 너는 천사님 머리에 똥까지 쌌어.”
새들이 너도나도 직박구리를 나무라며 몰아내자 조각천사가 말했어요.
“얘들아, 그만해. 직박구리도 추우니까 내 품으로 들어오라고 해.”
“천사님, 다른 새는 다 되어도 직박구리는 절대로 안 돼요. 천사님한테 얼마나 나쁘게 했는지 아시잖아요.”
“난 괜찮아. 벌써 다 용서했어.”
직박구리를 밀어내던 새들이 조용해졌어요.  
“직박구리야, 내 옆으로 와.”
산비둘기가 부르자, 직박구리가 잽싸게 비둘기 옆으로 들어갔어요. 새들이 가득 들어간 조각천사의 품속이 따듯해지기 시작했어요. 몸이 따듯해지자 조각천사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처음으로 느끼는 행복이었어요. 서먹서먹하던 새들도 따듯한 조각천사의 품속에서 곧 친구처럼 친해졌어요.
함박눈은 앞이 안 보이도록 펑펑 쏟아졌어요. 재재거리던 새들은 어느새 서로 기댄 채 꼬박꼬박 졸고, 몰려다니던 가랑잎들도 눈에 묻혀 조용했어요.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조각천사가 깜짝 놀라 새들을 깨웠어요.
“새들아, 이게 무슨 소리니?”
새들도 비명소리에 놀라 귀를 숲 쪽으로 기울였어요.  
“내가 가볼게요.”
직박구리가 포로롱 날아갔어요. 그러나 직박구리가 금방다시 돌아오며 외쳤어요.
“큰일 났어요. 산토끼가 덫에 치어 죽으려고 해요."
산토끼가 죽을 거라는 말에 조각천사의 가슴이 쿵쿵 뛰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다시 비명소리가 들리자 새들이 한꺼번에 후르르 날아갔어요.
"나도 같이 가자."
조각천사도 힘껏 날개를 펄럭이며 소리쳤어요.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죠? 갑자기 조각천사의 몸이 가볍게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날아갔어요. 그러나 조각천사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어요. 오로지 죽어가는 산토끼를 구하려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조각천사는 재빨리 산토끼를 덫에서 빼내었어요. 다행히 산토끼는 금방 구조되어 많이 다치지 않았어요. 조각천사가 옷을 찢어 산토끼를 싸매는데 산비둘기가 날아오며 소리쳤어요.  
“천사님! 천사님! 어떻게 날아오셨어요?”
그제야 조각천사는 자기 몸을 둘러봤어요.
“내가 어떻게 왔지? 정말 내가 혼자 여기까지 왔니?”
“예, 제가 따라올 수도 없이 바람처럼 빨리 날아오셨어요.”
까마귀, 직박구리, 멧새들도 날아오며 야단법석이었어요.
“천사님! 진짜 천사가 되셨어요?”
조각천사는 가슴을 만져봤어요. 아! 정말 가슴이 따듯했어요. 가슴뿐만 아니라 온몸이 따듯했어요.
“새들아, 고마워. 너희들이 나를 따듯하게 해주어서 내가 천사가 되었어.”
“아녜요. 천사님이 우리를 따듯하게 품어주셨지요.”
새들이 좋아서 재재거리는 소리가 동산 밑에까지 들렸어요.
“천사님! 이제 천사님은 좋은 일을 하실 수 있어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산비둘기가 천사 어깨에 앉으며 물었어요.
“그야 물론 우리 조각들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람이 되게 하고 싶지.”
천사가 새들과 이야기 하는데, 갑자기 조각공원에서 함성이 울리며 사람들소리가 들렸어요.
"아무도 없었는데 누가 왔을까요?"
궁금한 건 못 참는 새들이 공원으로 날아갔어요. 조각천사도 산토끼를 안고 새들을 따라 갔어요.
조각공원이 가까워질수록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춤추는 모습이 보였어요.
산비둘기가 까만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사람들을 자세히 보더니 소리쳤어요.
“천사님! 사람이 됐어요. 사람이 됐어요!”
“사람이 돼? 뭐가 사람이 되었단 말이냐?”
“조각들이 사람이 됐어요. 보세요. 저 아이는 분수에서 오줌을 싸던 오줌싸개 꼬마예요. 그리고 저기 꽃 파는 아가씨와 화가! 그리고 씨 뿌리는 농부가 있잖아요.”
“그럼 저 사람들이 다 조각들이었니?”
“예, 모두 이 공원의 조각들이었어요.”
노래하며 춤추던 사람들이 천사를 보자 달려왔어요. 수십 년 동안 같은 공원에 있었지만 이제야 만난 것입니다. 천사와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했어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천사가 여자들에게 물었어요.
“숙녀여러분! 오늘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입니까?”
“바느질을 해보고 싶어요.”
“요리를 해보고 싶어요.”
천사가 빨가벗은 오줌싸개를 옷으로 감싸 안으며 말했어요.
“옷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이 귀염둥이 옷을 만들고, 요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음식을 만들면 어떨까요?”
“예, 좋아요!”
여자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어요.
“신사 여러분! 오늘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입니까?”
천사가 남자들에게 물었어요.
“우리는 남자들이니까 집에서 아빠들이 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그럼 몇 사람은 할아버지 집이 너무 낡았으니 고쳐드리고, 다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까요?”
"예, 좋습니다."
남자들도 모두 두 손을 높이 들며 환호성을 올렸어요.
“지금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퇴원시키러 병원에 가셨어요. 두 분이 오시기 전에 빨리 합시다.”
“예,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관리실로 가서 각자 맡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옷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집을 수리하고,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어요. 웃고 떠들며 일하는 사람들은 조각으로 있던 몇 십 년보다 오늘 하루가 몇 배나 행복했어요.

어느덧 날은 어두워 캄캄하고 함박눈은 계속 내렸어요. 할아버지의 차가 덜커덕거리며 조각공원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어요. 유리창 밖을 내다보던 할머니 눈이 반짝 빛났어요. 조각공원이 온통 색색의 꼬마전등으로 반짝였기 때문이에요.      
“여보, 당신 혼자 크리스마스 준비를 했어요?”
“크리스마스 준비?” 할아버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봤어요.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만들었어요? 조각공원이 보석으로 만든 성 같아요. 여태까지 당신이 만든 것 중에 제일 아름다워요!”
  “...... ??”
할아버지는 눈을 비비며 다시보고 또다시 봤어요. 반짝이는 조각공원은 정말 보석으로 만든 성 같았어요.
“음, 맛있는 냄새도 나네요. 음식까지 만들어 놓고 날 퇴원시킨 거예요? 당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멋진 분이예요.”
차에서 내린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다 다시 함성을 올렸어요.
"여보, 당신이 혼자 이걸 다 했어요?"
벽난로에서는 나무가 활활 타고, 창가에선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가득 있었어요.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크리스마스트리로 달려갔어요.
“여보, 여기 선물도 있군요!”
할아버지는 어린소녀처럼 기뻐하며 선물을 뜯는 할머니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어요.
“누굴까? 혹시 산타클로스?!”
할머니가 하도 기뻐하자, 할아버지는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말을 못했어요. 아무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맛있게 저녁을 먹고 선물을 풀어보며 즐거운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어요.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었어요.
잠에서 깬 할아버지는 전날 밤 일이 꿈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했어요.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는 걸 보면 꿈이 아닌 게 틀림없었어요. 그리고 식탁 위에는 어젯밤 맛있게 먹던 음식이 남아있었어요.
“정말 어젯밤 우리 집에 산타클로스가 왔었군!”
할아버지가 집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어요.  
“어제 눈이 많이 왔으니 조각들을 둘러봐야겠어.”
할아버지가 겉옷을 입으며 할머니에게 말했어요.
“나도 조각들이 보고 싶어요."
할머니도 목도리를 두르고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어요.
하얗게 눈 덮인 조각공원은 아침 햇빛을 받아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거렸어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조각공원을 둘러보던 할머니가 말했어요.
“오늘은 크리스마스라서 조각들도 행복한가 봐요.”
“정말 오늘은 조각들이 더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네.”
할아버지도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저것 좀 보세요. 오줌싸개가 옷을 입었네요. 누가 입혀줬죠?”
분수 앞에 온 할머니가 옷 입은 오줌싸개를 보고 물었어요.
“어제 밤 산타가 입혀 줬겠지. 빨가벗어서 추워 보이더니 잘 되었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축하며 산비탈로 올라가자, 조각천사 품속에서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고 있었어요.
"웬 새들이 저리 많지요? 동산의 새들이 다 모인 것 같아요."
할머니가 새들을 보며 좋아했어요.
"새들이 천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군. 저기 산토끼도 한 마리 있네!"
할아버지도 웃으며 말했어요.
“역시 당신은 훌륭한 조각가예요. 천사가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아요.”
할머니가 조각천사를 보며 자랑스럽게 말했어요.
할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빙그레 웃었어요.

"쿠-쿠루르르, 메리크리스마스! 쿠-쿠루르르, 메리크리스마스!”
조각들을 찾아온 산비둘기가 할아버지할머니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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