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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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너도 나중에 새끼 낳아봐.

2007.08.31 03:11

최향미 조회 수:1096 추천:107

                          .

        딸아이는 떠나고, 남은 설거지를 한다. 처음으로 혼자 운전해서 집에 오는걸 허락하고 집에 올 때까지 맘졸이며 기도하던 것이 어제일 같은데 그새 떠났다. 이제 대학 이년생활을 마친 어엿한 어른인데도 엄마 눈에는 운전하는 모습만 상상해도 늘 가슴이 졸여지는 어린아이만 같다.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는 시기에 맞춰, 살던 곳을 떠나 멀리 이사를 온지 이년이 가까워 온다. 제 식구가 있어도 아직은 낯설기만한지 방학이 되어도 딸아이는 집으로 올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자란 외갓집을 제집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다 집에 오고 싶어하면, 그 먼길을 운전하는게 걱정스러워 늘 우리가 데려오곤 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제는 저 혼자 집 찿아 오게 해 보자며 스스로 운전해오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이 백 육십 마일을 운전해 오는 길은 산도 넘어야하고 길이 좁아 조심해야 하는 곳이 몇 군데 있어서 그리 쉽지만은 않은 운전길이다. 남편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믿어보자고 한다. 딸아이는 자기 차를 몰고 와서 이곳에 있는 동안에 맘대로 다닐 생각을 했는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한다. 엄마마음은 그때부터 금식 기도라도 하고싶은 심정인데 말이다.
        아이가 집에 오기로 한 날이 정해지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이보다 먼저 LA에 내려가서 전에 잘 먹던 음식을 헤아려 장을 봐왔다. 작은아이도 신바람이 나는지 '엄마, 누나가 김치찌개도 좋아했어' 하며 거든다. 딸아이가 즐겨 먹던 것이라야 제 에미가 늘 쉽게 해주던 떡볶이라든가 떡국, 식혜, 맛살튀김등 보잘 것 없는 음식들뿐이지만 그 동안 딸아이 없이 세 식구가 맛있게 먹었던 것들을 또 기억해 내며 장을 보았다. 버섯과 부추를 살짝 볶아 아들녀석이 개발한 새콤 달콤한 소스에 찍어 먹이면 얼마나 잘 먹을까 상상하며 싱싱한 부추와 버섯도 잔뜩 사왔다.
        딸아이가 오는 날, 눈을 뜨면서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무사히 도착하게 해주세요 하나님...' 마침 그날은 중간 지점인 베이커스 필드에 볼일이 있었다. 나도 그곳까지 내려가서 딸아이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운전을 하면 되겠다 싶어 조금 안심이 됐다. 씩씩하던 남편도 은근히 걱정이 되는지 '나도 같이 가서 현아랑 만나서 올까?' 한다. 하지만 아들 녀석이 '엄마, 누나가 중간에 학교 친구랑 만나서 샤핑하기로 했데' 하는 게 아닌가. 대학에서 사귄 친구가 우리 집과 한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서 사는데 오는 도중에 둘이 만날 약속을 한 모양이다.
        베이커스 필드에 도착해 일을 보면서 '현아야 어디까지 왔니?' 그렇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혹시나 운전 중에 전화 받는 일이 위험해 질까봐 아이가 전화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 인제 산 넘었어. 아빠가 엄마 걱정한다고 전화 하래서...' 기다리던 전화속의 아이목소리는 밝기만하다. '그래 애썼다. 엄마랑 만나서 같이 갈까?' 하니 '괜챦아. 가다가 리즈랑 만날꺼야. 엄마 일 천천히 보고 와' 한다. '그래 산도 잘 넘었는데 이제 된 거지 뭐' 하면서 스스로 안심시킨다. 그래도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대충 마무리짓고 일을 끝냈다. '현아야. 엄마 지금 너 있는 곳으로 지나가는데 뭐하니? 아직 출발 않했어?' 은근히 만나서 같이 가기를 기대하는데 대답은 '엄마 먼저 가' 이다. 내가 왜 또 이러나 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쓸고 길을 재촉한다.
        딸아이는 아침 열 시에 외할머니 댁을 출발해서 오후 다섯 시에 집에 도착했다. 대견하고 기특한 우리 맏딸, 뭐부터 해 먹일까 마음만 바쁘다. 함께 자란 친구와 같이 온 딸아이는 그 긴 운전길도 힘들지 않았는지 친구의 머리 염색을 해준다며 분주하다. 엄마한테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친구를 욕조에 앉혀놓고 깔깔대며 머리 염색을 해주는 딸아이한테 눈 한번 흘겨준다. 하지만 '자기 집에서 저렇게 친구랑 장난도 치고 싶었을텐데... 주말마다 외할머니댁에 갔어도 제집처럼 편하기야 했을까'하는 마음이 드니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드는 것이다.
        서둘러 음식을 만들었다. 요즘 작은아이가 잘먹는 누드 김밥이라는 것을 만들어 먹인다. '맛있니? 맛있지? 많이 먹어 응?'  김밥은 아이가 먹는데 왜 내 배가 불러오는지 모르겠다. 이것 저것 먹이다 보니 밤 열 한시가 넘어간다.  자기가 먹던 그릇을 설거지하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그제서야 나도 김밥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전에 봤을 때 보다 조금 더 살이 오른 엉덩이를 보니 잔소리가 튀어나온다. '현아야 살이 더 쩠네. 신경 좀 쓰면서 살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 엄마! 나도 생각하면서 살아! 나는 신경 안 쓰는 줄 알아? 이렇게 늦게 엄마가 밥도 줬쟎아. 그럼 먹지마?' 라며 쏘아 부치듯 대꾸한다. 잠시 멍해졌다. 대꾸할 말도 생각이 안난다. 딸아이의 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당황스러워 지는걸까.
        딸아이는 말대꾸도 잘 안하고 큰 아이였다. 엄마의 마음이 뭔지 제가 먼저 헤아려서 일 처리를 하던 그런 아이였다. 말대꾸하는 아이가 오히려 속을 보여줘서 기르기 편한 아이라고 친구들이 얘기하면 은근히 걱정이 되던 속 깊은 아이였다. 이년동안 기숙사 생활 끝내고 새로 지낼 아파트도 저 혼자 얻은 든든한 맏딸이다. 지금 나한테 발끈해서 대꾸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공부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겠구나. 그래도 엄마라구 응석도 부리네' 하며 흐믓한 마음도 슬쩍 든다.
        며칠이 지나니 슬며시 돌아갈 궁리를 하는 것 같다. 친구가 가고 싶어하는 '허스트 케슬'에 다녀오면 다음날로 내려가고 싶단다. 자기 차로 올라온 즐거운 이유가 아무 때나 내려 갈 수 있으리란 계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서 교회 일도 봐야되고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이유를 늘어놓는다. 아직 해 먹이지 못한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그래도 붙잡아둘 이유가 궁색하다. 하지만 삼 주후에 다시 와서 제동생 개학할 때까지 있으면서 대입준비를 돕기로 약속을 한다. 다음에 오면 이번에 못다한 것들을 해줄 기대를 하며 섭섭한 마음을 접는다.
        떠나기 전날 밤에 아이가 듣지도 않을 잔소리가 자꾸 나온다. "빨리 자라. 내일 운전 오래 해야되는데 피곤하면 안되." 하지만 역시 아이들의 방엔 불이 열 두시가 넘도록 꺼지지를 않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김치찌개를 다시 한번 만들고 첫날 맛있게 먹어주던 그 김밥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새벽부터 뭐해? 도시락? 가면서 햄버거 하나 사먹으라면 되지...'하는 남편의 핀잔도 내 맘을 헤아렸는지 슬그머니 말꼬리가 흐려진다. 한번 더 엄마가 만든걸 먹이고 싶은 에미의 마음을 아이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멀리 가는 길에 엄마의 손길이라도 동행시키고 싶다.
        '엄마 쎄리토스에 도착했어. 한나 내려주고 할머니집으로 갈께' 피곤한 듯한 아이의 전화를 일하는 도중에 받고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고른다. 딸아이가 훌쩍 커 버린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딸아이의 빈방에 들어가니 너무 깨끗하다. 여기저기에 던져놓은 옷가지가 지저분하다고 흉을 봤는데 너무 말끔하게, 아이의 온기까지 모두 가져 간 것처럼 썰렁하다.
        저녘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딸아이가 대들 듯 말대꾸하는 당황스러웠던 모습이 슬금 떠오른다. 저 잘먹던 것 해놨더니 심드렁한 모습으로 젓가락질하던 모습도 공연히 기억이 난다. 그새 그리움이 올라오더니 애꿎은 딸아이의 새로와진 모습에 심술이 부려진다. 어느새 저렇게 커버려서 나도 모르는 자기만의 성을 지어놓은 것 같아 낯설기도 하다. 오래 전에 울 엄마가 '너도 새끼 낳아봐' 하던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어울리지도 않게 말이다.
        작년하고 달라진 딸아이가 어쩐지 모래처럼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문득, '너도 나중에 새끼 낳아봐' 하는 심술이 입에 맴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어미의 이 아린 소리를 내 딸은 안하고 살게되기를 빈다. 해주고 해줘도 늘 부족해서 미안한 이 마음을, 그리고 자기 자식에게 -너도 나중에 새끼 낳아봐-하는 쓰린 소리하는 에미 마음을 우리 딸은 모르고 살았음 좋겠다. 그냥 늘 행복한 어미로 살게 축복을 빌어본다. 어쩌면 말도 안되는 욕심이라고 해도 좋다.
        행주로 말끔히 물기를 닦아내는데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저 잘 난 줄만 알고 살던 나에게 -너도 나중에 새끼 낳아봐 -하던 그때 울 엄마한테 왜 이렇게 미안한건지. 맏딸 멀리 보내고, 기숙사로 반찬 들려 보내시며 아직도 그 딸년의 딸년 챙기시는 울 엄마가 갑자기 아리게 보고 싶다.

                                              2007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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