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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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콩나물국

2008.05.13 03:19

최향미 조회 수:807 추천:96

    



        봄바람 우습게보다가 걸린 감기가 아직도 끝난게 아닌가 보다. 조금만 피곤해져도 컹컹 소리를 내며 다시 기침이 나온다.  그때마다 뜨끈한 국물이 그립다.
        
        한 달 전 친정에 갔었다. 가기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긴 운전길이 조금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5일 정도 여유 있게 다녀 올 예정이라 신바람만 났다. 그런데 도착한지 이틀 후 부터 감기가 심해진다. 항생제를 먹어도 기침이 시작되면 눈물이 찔끔 나게 통증이 온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다녀오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몸은 자꾸 눕고만 싶어진다. 급기야는 현기증까지 나는 바람에 결국 침대위에서 앓기 시작했다.
        
        약에 취해 잠만 쏟아진다.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하는 소리가 잠결에 들린다. 외출 나갔던 친정엄마가 돌아오셨나 보다. 한참을 지나도 방문 한번 열어 보지를 않으신다. 야속하다. 공연히 심통이 난다. 어리광도 부리고 싶어 더 아픈 얼굴을 지으며 부엌으로 나갔다. 세상에...아랫도리는 정장 치마에 윗도리는 속옷 바람이시다. “이제 일어났어? 좀 어떠니,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네...엄마가 콩나물 사왔다. 아무래도 콩나물국을 먹어야 감기가 떨어질 거 같아서. 조금만 기다려, 다 돼간다“하신다. 외출 나갔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콩나물 한 봉지를 사들고 서둘러 돌아 오셨단다. 급한 마음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콩나물국을 끓이셨나보다.
        
       “입에서 안 받아도 어서 먹어라. 고추장 풀어서 먹으면 땀도 나고 또 먹을 만 할거야. 그래야 약도 먹지. 그래그래 한술 더 떠라.” 식탁 건너편에 앉아서 내 숟가락만 쳐다보신다. 귀는 멍멍 하고 입은 써서 국을 삼키기도 힘들지만 정말 순한 아이처럼 먹었다.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아픈 자식 쳐다보는 울 엄마의 쨘한 눈빛 때문에 그렇게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놀란 남편이 내려와서 나를 데려 갈 때까지, 애 낳고 시간 맞춰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 받아먹던 그때를 생각하며 엄마 앞에서 콩나물국만 먹었다. 객지로 이사 간지 삼년 만에 결국은 크게 탈났다며 가슴 아파하는 울 엄마한테 공연히 미안해서 속눈물이랑 같이 꼭꼭 씹어 먹었다.
        
        기침이 또 난다. 내일은 꼭 콩나물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엄마가 싸 주신 고추장 한술도 구수하게 풀어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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