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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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엄마 나 보약 해줘

2008.06.28 13:55

최향미 조회 수:956 추천:130

        

        학교마다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들은 방학이고 엄마들은 개학이 된 거라고 말들을 한다. 삼 개월 가량 되는 긴 여름방학동안 잘 챙겨 먹여야 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부산해지는 때이다. 모든 엄마들에게는 아이들의 세끼 식사가 방학 중에 제일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는 아들 녀석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게 해줄까 궁리중이다.

        둘째 아이가 처음 가방 메고 학교에 가던 날이 잊혀 지지가 않는다. 엄마 눈에는 아직도 아기 같은 막내를 학교에 보내놓고 흥분 반 걱정 반으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서서 교실을 나오는 아이의 어깨가 조금은 쳐져 보였다. 하루 종일 긴장을 했겠구나 싶어 대견한 마음 보다는 먼저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집으로 오는 길에 차 뒷 자석에 앉은 녀석의 얼굴을 백미러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이런 저런 말을 붙여 봤다. 건선 건성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하려는데 아이가 조그맣게 말을 한다. “ 엄마 나 보약 해줘!” 무슨 말인가 싶어 대답할 말을 찿고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 엄마 나 보약 먹을래...” 하는 것이다. 비위가 약해서 한약 먹기를 무척 힘들어 하던 꼬마가 보약을 지어 달라니 허...하고 웃음이 먼저 나왔다. 이유를 물으니 한사코 ‘ 그냥... ’ 하는 것이다.  시간 나면 우리 꼭 보약 지으러 가자는 말에 그제서야 아이의 풀죽은 어깨가 조금 펴지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제 등치보다 훨씬 큰 서양 아이들 속에서 기가 죽었었나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꼬마 녀석의 생각이 기특했다. 기죽은 외모는 보약을 먹고 나면 해결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사내 녀석이라고 자존심 상한 마음에 ‘나 학교 안가’ 라고 억지라도 부렸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 그런데 삼학년에 올라간 첫날 집에 오더니 또 보약 타령이다. 보약을 한번 더 먹어야겠다는 것이다. 학년이 올라 갈수록 자기보다 키가 큰 친구들이 많아져 마음이 상했나보다.

        나는 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을 저축 잘 하는 시간으로 만들라고 늘 말해준다.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에 조금 더 여유롭고 당당하기 위해서는, 방학 동안에 건강도 더 보살펴야하고 많은 여행과 경험으로 부자가 되게 해 주려고 아이들과 노력한다. 이런 것들을 몸과 마음에 잘 저축해 놓았다가 새 학년에는 넉넉하고 자신감 넘치는 밝은 마음으로 다시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비록 덩치 큰 서양 아이들의 외모를 따라 잡을 수는 없어도 보약을 지어 먹은 듯 몸도 마음도 씩씩하고 기운차게 출발하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06-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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