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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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차선을 잘 지키며

2008.07.07 14:34

최향미 조회 수:902 추천:131




        

        좌회전을 하려고 신호 대기선에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쌩-하며 반대 차선의 차가 지나간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늘 하던 대로 좌회전을 하려고 서 있었던 것이었는데 왜 이렇게 놀란 건지 나도 의아스럽다. 지나치는 차들을 보니 서 있는 내 차와의 거리가 무척 가깝다. 팔을 쭉 내밀면 그 차들이 내 손에 닿을 만한 거리다.

        문득 반대편에서 오던 차가 조금만 방향을 틀어 달려온다면 지금 내 차와 정면으로 부닥칠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찔한 생각이다. 그런 사고가 생길수도 있는 건데 그동안 별 생각 없이, 겁 없이 운전을 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매번 그런 불안 속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거라면 며칠이나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까싶어진다. 순간 ‘상호간의 신뢰’ 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정해진 차선 안에서 정해진 속도를 지키며 운전을 하듯 마주 오는 운전자도 그렇게 하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 교통 법규를 매번 잘 지키는 운전자는 아니다.

        이년 전에 교통 위반 티켓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받은 금전적, 시간적 손해 때문에 그 후로 다시는 경찰에 걸리지 않으려고 교통 법규에 대해 예민한 운전자가 된 것 같다. 시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켜야할 법을 내가 받을 손해 때문에 애쓰며 지키는 그 정도의 준법정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손해 보지 않으려고 지키는 법이라 해도 결국 더불어 사는 세상에 질서가 유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라도 지켜지는 질서 속에서 실은 우리가 서로 보호 받고 있는 것이리라.

        교통 법규뿐만 아니라 사는 곳곳에서 우리는 무언의 신뢰와 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직접 만들지 않은 음식도 별 의심 없이 맛있게 잘 먹는다. 우체부가 나를 대신해서 그 먼 곳까지 잘 배달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체통에 중요한 서류를 밀어 넣는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나는 내가 서 있어야할 선 안에서 잘 가고 있는 것 일까. 내가 지키지 않은 차선 때문에 교통사고 나게 운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교통순경 아저씨 한명 내 마음에 세워놓고 싶다. 차선 이탈로 사고가 나기 전에, 티켓 끊어 줄 교통순경을 내 양심에서 불침번 서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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