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야 물렀거라

2016.12.17 09:07

성민희 조회 수:44

나이야 물렀거라



 아침 공기가 아직은 싸아한 이른 아침. 남편을 통근 기차역에 내려주고 집으로 오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지금은 엄마도 어덜트 스쿨에 가는 시간이다. 대학교 옆 작은 건물에서 갓 이민 오거나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영어공부를 가르쳐주는 곳이다. 차를 그곳으로 돌렸다.

 어머니는 연세가 일흔 여섯이신 데도 노인복지회관에는 안 가신다. 신체 어느 한 군데 아픈 곳이 없는 덕분이기도 하지만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 신세를 질 수 있을 때까지는 하루에 몇 백 불씩 정부 돈을 지출하게 하는 일은 싫다고 한다. 대신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라인댄스나 취미 교실을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나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있는 것 보단 젊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훨씬 좋다며 어덜트 스쿨에 등록을 하셨다. 영어도 못하면서 어떻게 등록을 했는지 신기했다.
 
 저 멀리 골목길에 레게머리 흑인 소녀와 이어폰을 귀에 꽂은 히스패닉 청년들 틈에 섞여 어머니가 걸어가신다. 어머니 어깨에 걸린 노란 백팩에서 아침 햇살이 사락거린다. 차를 찌꺽 세웠다. 쟈켓 후드 아래에서 움칠하던 작은 눈이 나를 알아보고는 이내 환히 웃는다. 영어 배우러 가는 엄마가 궁금해서 왔지요.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어머니는 포즈까지 취해주신다. 어머니의 보폭에 맞추어 천천히 따라 차를 몰고 가며 물었다. 엄마, 힘들지 않아요?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기는 해요? 아니, 알아듣기는 무슨. 그냥 앉아 있는 거지. 내가 바보같이 앉아 있으면 선생님이 와서 개인지도 해준다 아이가. 옆에 앉은 학생들이 다 내 개인 선생이다. 내가 입만 벙긋하면 왁작 달려와서 도와준다. 아이고. 모두다 어찌 그리 착한지. 쉬는 시간이면 먹을 것도 갖다 준다. 그래서 나도 오늘 빵 좀 사간다. 멕시칸하고 흑인들이 내가 사 가는 한국빵 엄청 좋아한다. 어머니는 호호호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셨다. 오늘도 새로 태울 하루를 위해 마음 심지 돋우며 씩씩하게 들어가신다. 
 
 집에 와서 오빠와 동생들에게 아침에 찍은 사진을 전송했다.
막내 남동생은  “Wow! Good. Hahaha.”
여동생은 “Cute student, good job! ”
큰 남동생은 “눈물이 나네요.”  한참 뒤에 또 문자가 왔다. “점심은 어떻게 하시는지?”
오빠는 따르릉 전화를 걸어왔다. “희야, 혹시 전화 했더나?” 내가 사진을 보낸 줄도 모른다. 나이별로 전혀 다른 반응이다. 자식들끼리도 이렇게 세대 차이가 나는데 어머니는 그 어린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서 어떻게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올 봄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퓨전수필> 행시 제목이 ‘봄은 노래한다’라고 했다. 오늘 내친 김에 행시도 지었다.

봄볕 따사론 아침 노란 백팩 등에 메고
은빛 머리칼 날리며 어덜트스쿨 가시는 우리 엄마
노숙 청년 시커먼 손에 동전 한 닢 쥐어주고
래게머리 흑인 소녀 등 토닥이며 일러주네
한 세상 살아보니 아는 것이 힘이더라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배우는 데 힘 쓰거라.

<사람이 고향이다 2016>


photo_2.jpg


8595403f745b9a829552580fd7195bb6.jpg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497,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