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쿠, 라세쿠, 드디어는 헤이마

2013.02.11 11:01

성민희 조회 수:317 추천:44

노세쿠, 라세쿠, 드디어는 헤이마 / 성민희 얼마전에 벌어진 엉뚱한 사건을 소재로 글을 썼다. 친구네 도우미로 일하는 미얀마 아가씨가 주인공이다. 처음엔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제시카라고 썼다. 그런데 그 이름은 도통 도우미란 느낌이 나지 않는다. 할수 없이 친구에게 전화로 물었다. 노세쿠라고 한다. 맞다. 노세쿠. 진짜 이름을 넣으니 그런대로 글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 저녁 나절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까는 바빠서 못 물어 봤는데, 노세쿠 이름을 왜 물었냐 한다. 담벼락 낙서 사건을 글로 썼다는 내 말에 깜짝 놀란다. 빨리 노세쿠 이름을 지우라 한다. 그 이름이 들어가면 자기네 이야기란 걸 사람들이 금새 알게 된단다. 할 수 없이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분위기상 미국 이름은 도저히 안되겠고 노세쿠는 못 쓰고. 노세쿠랑 가장 비슷한 이름으로…… 라세쿠? 첫째 글자 하나만 바꾸면 어떨까 싶다. 그런데 라세쿠로 이름을 바꿔놓고 봐도 슬며시 걱정이 된다. 수필은 소설과 달리 허구를 쓸 수가 없다. 수필은 직접 체험한 사건의 재구성이 아닌가. 진솔한 내 삶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사실이 아닌 것을 끼워 넣었다가 그것이 밝혀지면 글 전체가 모두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수필가가, 봄냄새 느낌의 이름을 가진 가을꽃을 아무 생각 없이 봄동산에 피웠다가 그것을 지적하는 독자에게 된통 혼났다는 글을 읽는 적이 있다. 그는 어떤 예를 갖고 오던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정보를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나라 이름을 아예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태국도 가난한 나라. 태국은 어떨까? 마침 이웃의 태국 식당에 가서 종업원 아가씨 이름을 물어보면 되는데. 허지만 그것도 안될 것 같다. 태국 사람이 남의 집 도우미로 일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 필리핀? 필리핀 친구 이름을 살짝 쓸까? 그것도 곤란할 것 같다. 필리핀 사람들은 간호사나 의사의 직업이 많지 필리핀 도우미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글을 쓰다보면 가끔씩 글에 등장하는 사람의 사생활을 노출시켜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적당히 이름을 바꾸거나 장소를 바꾼다. P 선생도 친구와의 아픈 추억을 회상 하면서 오목교란 전철역 이름을 썼다. 실제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가 오목교였다. P선생은 오목교란 이름에서 오작교를 연상한다며 굳이 그 이름을 고수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지명에, 그 친구 이야기를 쓰면 독자들이 금방 유명인사인 친구 남편을 떠올리게 될 거라고 고민 했다. 목성균 수필가는 ‘나의 수필 쓰기’에서 약간의 거짓말은 미덕이라고 했다. 본인 작품 ‘세한도’에서 강 건너 사공집 앞에다 실제로는 없었던 늙은 버드나무를 하나 세워 꿋꿋한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세배 드리러 가는 행색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평생 등짐 한번 져보지 않은 아버지 등에 주루막을 지웠다. 그는 보다 감동적인 문학적 조처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누가 나무랄 것인가 반문했다. 그렇다고 보면 노세쿠 이름 쯤 바꾸는 것에 그리 가책을 느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허지만 누가 읽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확한 미얀마 여자 이름만은 가져와야 한다. 미얀마 이름을 어디서 찾나 아침 나절 내내 인터넷을 뒤져도 대통령 이름 외에는 없다. 남의 대통령 이름을 도우미에 갖다 댈 수는 없을 터. '미얀마 여자이름' 을 검색하니 미얀마에서는 성은 없고 이름만 있다. 라는 말만 나올 뿐 그 흔한 여자 이름을 말해주는 곳은 없다. 피곤하다. 커피나 한잔 마셔야겠다. 아래층에 내려와 커피를 끓였다. 달콤하고 고소한 Govida 커피향 속에서 갑자기 동남아 출장을 자주 다니는 아들이 떠오른다.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를 간다고 하던데 미얀마에도 가지 않을까? 얼른 아들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 Son, By chance, do you know of a Myanmar girl's name? - Hi, Mom, what kind of Myanmar person? - Doesn't matter. Any girl's name will work. - Why? What do you need it for? 에이, 녀석. 가르쳐 달라면 그냥 가르쳐 줄 일이지. 따지기는. 쯪쯪 - I wrote an essay involving Hyun azumma’s maid and I can't use her real name. - Why not? - If I use her real name, then peple reading the essay will know that it's about Hyun azumma. She doesn't like that idea. - Haha, Too bad. What was her real name? 허허이. 이 녀석 오늘따라 왜이리 말이 많을꼬. 문자를 암만 보내도 맨날 바쁘다고 답은 커녕 모른 척 하더니 - 노세쿠. - Mom, some common names are Sanda, Thanda, Thiri, Hayma 쌘다, 딴다, 티리, 헤이마? 아무래도 세 글자 이름의 느낌이 부드럽다. 헤이마가 좋을 것 같다. - Oh, ok. I like Hayma. I will use that name. - Haha, ok. great. 이리하여 내 글에 등장하는 친구네 도우미 이름은 제시카로 시작하여 노세쿠, 라세쿠를 거쳐 드디어는 헤이마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자기가 이 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줄 알면 또 어쩌지? 아들이 한글을 못 읽는 게 이럴 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497,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