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투표 용지

2012.11.06 01:41

성민희 조회 수:398 추천:18

 

잃어버린 투표용지

 

 

 

  여드름 송송 했던 제임스가 결혼을 한단다.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려 13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함께 한 아들의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더니 어느 새 어른이 되어 소식을 보내왔다. 청첩장에 적힌 이름 위로 함께 공부하며 뛰놀던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몸과 마음이 보드랍던 사춘기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들. 그 속에 잊을 수 없는 상처 하나가 불쑥 튀어 오른다. 가슴 깊숙이 가라앉아 이제는 잊어 버렸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전 세계의 공립학교 중에서 한국 학생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민 온 지 오래된 교포 자녀로부터 한국서 조기유학 온 아이들까지 상당한 숫자가 있는 터라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를 위해 한인학부모회도 조직되어 있다.

  여름방학을 앞둔 6월 초순, 전교회장과 각 학년회장을 뽑는 때가 되었다. 전교회장 후보는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여학생인 헬렌이고 또 다른 후보는 내 아들 라빈이었다. 그리고 각 학년을 대표하는 학년회장 후보로는 아들과 가장 친한 제임스가 나섰다. 헬렌은 입학 때부터 학생회에 들어가 담당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3년을 보낸 고운 아이였다. 그러나 라빈과 제임스는 전혀 학생회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라빈은 SAT 만점에 각종 경시대회에서 메달을 목이 무거울 정도로 메고 오는 아이였고, 제임스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모범학생이었다. 그러나 평화스러운 학생회를 이끌고 가는 담당 선생님에게는 버거운 사춘기 남학생들일 뿐이었다. 비상한 머리에 리더십까지 뛰어난 두 친구가 한 팀이 되어 전교회장과 학년회장이 되어 학생회를 장악하겠다고 나섰으니 선생님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라빈은 선거 운동을 아주 특이하게 했다. 손으로 눌러 터뜨리면 딱딱 소리가 나는 포장용 기포 비닐에 이름과 기호를 새긴 스티커를 붙여서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재미있고도 신기하여 서로 다투어 터뜨렸다. 교실에서도 식당에서도 온 학교가 딱총 터지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함께 터뜨리며 장난을 쳤고, 라빈의 이름이 전교생들에게 계속 불리워졌다. 매끄러운 언변에 매력적인 외모. 남자다운 호기에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까지. 백인, 흑인, 멕시칸, 중국, 필리피노 등 인종에 상관없이 라빈의 인기는 날로 올라갔다. 그러나 학생회 담당 선생님은 걱정이었다. 조용한 학생회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두 개가 갑자기 나타난 격이었다. 선거 운동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라빈과 제임스를 향한 담당 선생님의 핍박이 시작되었다. 정견 발표 중 제임스가 웃통을 벗어 던지며 퍼포먼스를 한 것이 꼬투리가 되었다. 신성한 학교에서 섹스어필을 했다며 그의 후보 자격을 박탈해 버렸다. 그는 전교회장 후보와 학년회장 후보 두 남학생을 한데 묶어 불량아로 몰아갔다. 전교생들이 반발하며 우우 거렸지만 선생님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제임스의 엄마는 항의는커녕 오히려 선생님을 찾아가 자식교육을 잘못시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백인들이라면 도저히 용납 못할 선생님의 전횡을 도리어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한국 정서가 나는 못마땅했다. 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 정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이 딱했다. 사과를 받은 선생님은 더욱 기고만장이었다. 그는 아시아 작은 나라에서 온 부모의 약한 마음과 세련되지 못한 영어실력을 너무도 잘 이용했다. 제임스의 실격을 본 라빈도 한 풀 기가 꺾였다. 항간에서는 여학생 후보인 헬렌의 부모가 선생님과 함께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더라는 둥 아버지와 골프를 쳤다는 둥. 사실 유무를 알 수 없는 루머까지 떠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선거일이 되었다. 투표를 하고 나오는 아이들이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라빈, 라빈’ 을 외쳤고 헬렌의 친구들은 공공연히 ‘졌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구경을 하고 있는 내게 중국계 학부모가 걱정스레 말을 던졌다. 개표는 학생회 담당선생님이 혼자서 한다고. 자기 큰 아들도 작년에 분명히 이긴 선거였는데 개표 후에 보니 낙선이었다고 했다. 전직 전교회장이 개표를 함께 하자고 건의를 해보았지만 거절당했다는 믿을 수 없는 말도 했다. 그것이 몇 년째 내려오는 서니힐스의 개표 방식이라고 했다. 나는 합리적인 미국 사회에서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우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개표가 시작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교실 문 밖에서 웅성거리고 선생님은 투표함을 모두 자기 방에 가지고 갔다. 선거관리위원들은 선생님이 안에서 분류하는 소리에 숫자만 적을 뿐 투표용지를 볼 수는 없었다. 셈이 끝나고 발표가 났다. 당연히 헬렌의 승리였다. 아이들의 야유 소리가 학교 지붕을 밀어 올렸지만 어느 누구도 진상을 따지려는 사람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퇴근한 후였고, 아니 있었더라도 자기 관할이 아닌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None of my Business’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 벽마다 히틀러와 뿔 난 마귀가 된 그 선생님의 얼굴이 붙었다. 헬렌은 부끄러워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도 돌았다. 투표를 다시 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울퉁불퉁 솟는 걸 라빈이 말렸다. 존경할 수 없는 선생님하고 불화하며 고등학교 마지막 일 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학생회 입성을 거부했다. 전교생이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몇 분의 선생님들이 분개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입술을 깨물며 깨끗이 승복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권력이 주는 횡포를 담담히 수용하는 라빈이 참으로 장해 보였다.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부당한 권력 앞에 서야할 지 모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미국 땅에 뿌리 내린 게 잘 한 것이었는지 돌아봐졌다. 이민 온 후 처음으로 흘린 뜨거운 눈물이었고 가져 본 후회였다.

 

지금 라빈은 동부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에서 몇 년 근무 후, 워싱턴 D.C.에서 벤처캐피탈 회사의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회사 재무를 분석하고 그 곳에 투자하는 유능한 경제전문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제임스는 ROTC 군장교 복무를 마치고 명문 법대를 졸업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장래 창창한 아이들이 한때 불량 학생이란 낙점으로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그 선생은 얼마나 마음에 담으며 살고 있을까. 민감한 사춘기 아이들을 상대하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부정을 목격한 아이들의 소리를 부모가 들어주지 못했다는 그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제임스가 결혼을 한단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언젠가는 자기 모습의 아이도 낳고 살겠지. 그 아이가 자라서 그와 같은 경우를 겪는다면, 힘없이 당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자신은 비록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사건 앞에서 당당하게 싸울 것이다. 조용한 디아스포라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네 1세들과는 달리 거침없이 나서서 자식의 권리를 찾아주는 부모로 살기를 마음으로 축복해 본다.

 

<현대수필 2012 겨울호> < 사람이 고향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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