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세계가 주목하는 우수한 문자 '한글'
성민희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6/10/11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10/10 16:25
 

눈부신 햇살 아래 신랑 신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카메라맨이 뒤를 돌아보며 가족들 모두 나오라며 손짓을 한다. 사뿐사뿐 앞자리로 걸어가는 신부 엄마의 한복 저고리가 참 세련되었다. 은회색 바탕에 이리저리 뒹구는 꽃분홍색 격자무늬를 가까이에서 보니 한글의 기역 니은 디귿 리을이다.

 

한글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변형시킨 작품을 몇 년 전 서울에서도 본 적이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이규봉 화가의 <한글의 무한변신 뜻, 꼴, 그림전>이었다. 그는 한글의 획을 자유롭게 조합한 시각적인 효과로 다양한 무늬를 만들었고, 글자의 의미를 그 글의 생김새에서 드러나도록 표현했다. 한글의 구조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란 건 알았지만 이처럼 모양만으로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 놀라왔다. 어떻게 한글로 이런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세종대왕이 유생들과 관리들의 완강한 반대와 명나라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을 반포할 그 옛날 15세기 때에도 한글이 이렇게 사랑을 받으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한글은 과거에는 양반들이 암클 혹은 언문으로 비하하고 천시했으나 현재는 세계가 주목하는 특별하고 우수한 문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1913년 미국의 역사학자 호버 할버트(Homer Hulbert)는 3만 자가 넘는 한자의 어려움 때문에 중국인의 문맹을 걱정하는 총통 위안스카이에게 ‘한글을 중국인에게 가르쳐 글자를 깨우치게 하라‘고 조언을 했다. 중국학자들도 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으나 나라 잃은 글자를 가져다 쓸 수 없다는 반대 때문에 실행을 못했다고 한다. 또한 근래에는 유네스코에서 훈민정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한글이 우리 한국만이 아닌 인류의 중요 문화유산임을 공포했고, 지난 2009년 세계문자올림픽대회에서는 다른 나라의 글자들을 모두 제치고 한글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한글은 글자의 단순한 파생능력과 결합능력 덕분에 자판기에 입력하기가 쉬워서 핸드폰에다 엄지 하나로 쉽게 글자를 펼칠 수 있다. 중국의 한자나 일본의 가나, 영어는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속력으로 문장을 만들 수 있어서 해마다 핸드폰 세계문자입력 겨루기대회를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제패하고 있다고 한다.

 

한글은 실제로 발음할 때의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세계 유일의 음성문자다. 예를 들면 <ㄱ>은 혀가 연구개를 막는 모습을 상형하여 만든 것으로 기역을 발음하는 순간에 엑스레이 사진을 옆에서 찍으면 그 모양이 기역자 모양과 같다. 20세기 초에 영국의 음성학자 헨리 스위트(Henry Sweet)가 발음기관의 상형원리를 적용하여 발음기호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보다 600년이나 뒤의 일이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그 옛날에 어떻게 혀와 입안의 모양을 관찰하여 현대 음성학의 기술방법을 사용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처럼 한글은 지구상의 모든 민족과 인종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발음기관을 상형한 글자이므로, 세계 인류 공통의 문자가 될 것이라고 언어학자들은 전망한다. 실제로도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수마트라 등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들이 한글을 그들의 문자로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익히기 쉽고 사용하기까지 쉬우니 어쩌면 외국인들에게는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훌륭한 글자가 우리나라 글이란 것이 자랑스럽다. 주말 한국학교에서 교장을 하는 친구가 말했다. “개학하자마자 얼마나 학생들이 꾸역꾸역 몰려오는지 정신이 없어. 외국인들까지.” 이렇게 퍼져나가는 한글, 민족의 혼을 담은 우리의 보배 한글이 세계 구석구석 뻗어나가 지구촌 곳곳에서 한글 읽는 낭랑한 소리가 들려올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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