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운 것이 약

2016.08.14 16:15

성민희 조회 수:27

마음 비운 것이 약

 

  드디어 딸이 대학원을 졸업 했다. LSAT시험 점수가 잘 나왔다고 폴짝 거리던 모습, 오라고 손짓하는 명문 법대들을 펼쳐 놓고 열심히 재어보던 순간들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박수와 환호 속에 긴 가운을 펄럭이며 무대 위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돌아보면 딸은 그저 착하고 순하기만 할 뿐,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어 나를 흥분 시켜준 기억이 없다. 그저 꾸벅꾸벅 학교 공부 충실히 해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GPA나 SAT 점수를 잘 받아 보려고 애를 써도 수학이나 과학이 받쳐주지 않으니 답답하고, 그렇다고 밤을 새우며 남보다 더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은 너무 여려 애기 같아 경쟁이 심한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해 낼까가 더 걱정이었다. ‘그래. 욕심을 버리자. 너한테 맞는 학교에 가서 대학 생활이나 즐겨라. 명문 대학을 가지 않을 거라면 지금 이 성적으로도 충분하다.’ 11학년을 지나면서 마음속으로 욕심을 접었다.

 

  나의 무관심 속에서 SAT를 치고 여러 대학에 입학 원서를 내었다. 결과는 당연히 원하는 대학의 허가서를 받을 수 없었다. 예상했던 터라 나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는데, 딸은 그게 아니었던지 4년이 지난 후 대학원 입학 허가서를 받아 놓고 나서야 고백을 했다.

"엄마, 그 때 나 많이 울었어. 친구들은 모두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갔는데, 나만 엘에이에 남게 되어서. 그런데 엄마는 실망도 안하는 게 너무 섭섭했어. 'I'm not stupid'(나는 바보가 아니야)를 보여 주려고 열심히 공부 했어. "

  내가 마음을 비운 것이 이렇게 좋은 약이 되어 줄줄 몰랐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남을 도와주려고 하면, 도와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나라에서 인정하여 실어 주는 힘. 그걸 가지도록 해 보아라."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어떤 게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삶인지 가르쳐 주고 싶었다.

  어떤 직업을 가지라고는 한 번도 가이드하거나 강요한 적도 없다. 엄마의 말이 얼마나 아이에게는 굴레가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너는 아이들을 좋아하니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내 숙명인 줄 알고 다른 직업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갖고 싶은 직업, 내가 잘 할 것 같은 일이 너무나 많은데 나는 나 스스로 굴레에 갇혀서 살았다.

‘옛날 사람들의 직업은 퀴퀴한 냄새나는 삼등 여객선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의 직업은 호화 유람선이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 세대의 직업은 오직 가족 부양과 생계를 위한 것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말은 정말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강요로 의대에 간 아이가 졸업을 하자마자 부모님의 소원을 풀어드렸으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며 이태리로 요리를 배우러 가 버린 경우를 보았다. 부모님은 병이 나서 드러누웠지만 그 아이는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딸 친구들 중에서도 졸업하면 변호사 하지 않고 선생님이 될 거라고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주위에서 초등학생 아들한테 닥터김이라고 부르는 엄마를 보았다. 커서 꼭 닥터가 되라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아이가 참으로 불쌍해 보였다.

 

딸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어렴풋이 자기의 미래 모습을 그리는 것 같더니 그게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구체화되면서 공부할 이유도 함께 생겼다. 목적이 있으니 내가 힘들다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주중에 학교 일과가 끝나면 2시간을 달려 LSAT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밤 11시가 넘어서 기숙사로 돌아오는 힘든 과정을 조금도 힘들다는 내색 없이 잘 견디어내었다.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성취감도 더 큰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내가 여기에 없지?"

"당연하지. 엄마 아빠가 없으면 네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겠니?"

지금의 자기가 있도록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해 하는 서툰 한국말을, 이 철없는 엄마가 못 알아듣고 주책스러운 말을 했다.

"그게 아니고--- 엄마 아빠 땜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단 말이야."

"아하, 알긴 아는구나. 그래그래. 모두다 이 엄마 아빠 덕인 것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되느니."

졸업 가운을 벗어들고 우리들은 모두 가슴 가득 채워지는 웃음을 웃었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한국일보 교육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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