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캘리포니아선발대회

2016.08.23 16:40

성민희 조회 수:42

미스캘리포니아선발대회 

 

   전혀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곳에 왔다. ‘Miss California 선발대회가 열리는 팜 스프링의 호텔이다. 자손이 많다보면 돌연변이도 섞여 나온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조카들 중에 유달리 재능을 많이 가진 녀석이 있다. 가끔씩 또래가 발 담그지 않는 곳을 첨벙거려 색다른 세계를 체험하게 해주더니 이번에는 또 미스 캘리포니아에 출전한다며 나섰다.

 

    분위기가 우아하고 귀티가 나는 아이라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듣긴 하지만, 자존감이 그렇게 높은 줄은 몰랐다. 처음 미인대회에 출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무슨 방자한 자신감? 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덜컥 미스샌프란시스코에 뽑혀 버렸다. 각 도시에서 선발된 대표들이 또 미스 캘리포니아에 도전한다며 조카는 다니던 로스쿨도 휴학해버렸다

 일을 저지른 후 통보만 하는 아이에게 흔들 수 있는 무기는 단하나. 경제 봉쇄 조처다. 동생은 다이어트는 물론 합숙훈련 경비와 드레스 구입비 등을 일체 지원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그 협박은 천진한 아이의 어깃장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했다. 모금이라는 방법이 있었다. 절대 협조하지 말라며 우리 형제들은 각각 자기 아이들에게 엄포를 놓았지만 사촌들은 모금 봉투에다 돈은 물론 격려 편지까지 넣어 어른들 몰래 보내 준 모양이었다.  

 

   미스 캘리포니아 선출 하루 전 날. 도저히 모른 척 배짱을 부릴 수 없어서 부랴부랴 대회를 개최하는 장소의 호텔을 예약했다. 남세스럽게 무슨 응원이냐며 툴툴대는 동생을 겨우 설득하여 어머니까지 모시고 팜 스프링스 호텔로 갔다

   로비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몸을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머리가 허연 아버지가 드레스를 어깨에 툭 걸치고 굽이 마치 송곳 같은 하이힐을 손가락에 끼고 돌아다닌다. 화장가방이랑 옷가방을 든 가족들 얼굴이 마치 요란한 축제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활짝 피었다.

  출신 도시의 이름을 쓴 휘장을 두르고 다니는 후보들 중 의외의 모습도 있다. 초등학생같이 왜소한 동양아가씨가 있는가 하면 엉덩이가 양옆으로 불거져 걸을 때마다 곁의 사람들이 비켜줘야 할 흑인아가씨도 있다. 주근깨 자욱한 뺨을 파운데이션으로 덧칠한, 전혀 미인과는 거리가 먼 백인여자도 보인다후보자가 없는 작은 도시에서 단독 출마로 뽑힌 대표라는 조카의 설명에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럴지라도 그녀들은 당당하고 가족들은 마냥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딸의 머리를 만져 주는 엄마, 구두를 갈아 신겨주려고 큰 덩치를 구기고 엎드린 아버지,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눌려대는 형제들. 사람들은 딸의 일탈을 가족잔치로 승화시켜 함께 즐기며 추억을 만든다. 구석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뻐근해진다. 가당찮은 도전일지라도 승부에 상관없이, 인생의 득실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부모들이 놀랍다. 온몸으로 자녀들과 소통하는 것도 참 부럽다. 돌아보니 우리는 주류사회에 들어가 성공하라며 등을 떠밀기만 할 뿐, 아직도 버리지 못한 80년대의 한국식 잣대로 매사를 재단하는 부모였다. 조카는 얼마나 답답하고 한편 외로웠을까. 한 학기 늦게 졸업하면 어때. 부모의 완강한 그물을 씩씩하게 걷어낸 아이가 오늘은 오히려 대견하다.


  행사장 문이 열린다. 다른 후보들은 경쾌한 웃음을 날리며 왁자지껄한 가족들을 몰고 들어가는데 우리는 표를 구입하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다. ‘잘하고 올 게.’ 혼자서 문 안으로 사라지는 조카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가족을 위한 전야제 티켓을 구입 안 한 게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음성에 습습한 물기가 묻어난다.

   사람들은 파도처럼 행사장으로 쓸려 들어가고. 텅 빈 홀에 우리 세 사람만 덩그러니 서 있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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