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迂廻)

2007.10.28 20:12

장태숙 조회 수:884 추천:77

     우회(迂廻)
                            장태숙

살아야했다
짧지 않은 답보(踏步)의 시간
수직을 향한 타성은 물어뜯긴 자리에 묘비를 세우고
낮은 포복으로라도 기어가는 수평의 덩굴손
고양이 등처럼 둥글게 말아 숨죽여 뻗으면
경계의 끝에 걸리는 팽팽한 촉수
안간힘으로 목숨의 끈 움켜쥔다.

차가운 담장 따라 게걸음으로 걷는 등나무
살점 뜯긴 커다란 구멍의 상처가 욱신거린다    

새순 밀어 올리던 날부터 손가락 관절들
싹둑싹둑 잘라먹던 옆집 개
쇠창살 담장은 완벽한 단절을 하지 못했고
녀석의 기습적인 공격을 방관했다
사나운 이빨이 닿지 않을 경사진 땅 가늠하는
저 덩굴손의 긴장된 집중

여린 나무에게도 눈이 있다
그 눈으로 모진 세상을 보고
생각을 만들고 걸음을 익힌다
깊은 숨 몰아쉬며 천천히
눈치 채지 않게
은밀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6 새해에는 장태숙 2011.01.20 893
125 영정사진 장태숙 2011.01.20 727
124 미주문단, 큰 별이 지다 (조사) 장태숙 2010.02.14 1192
123 물 위에 뜬 도시 장태숙 2010.01.29 1126
122 전화 장태숙 2009.10.16 987
121 커피 향 젖은 봄날 장태숙 2009.07.08 1220
120 먼 길 떠나는 김수환 추기경 장태숙 2009.02.20 1073
119 자목련, 자목련 장태숙 2009.02.11 910
118 빈 집 장태숙 2008.10.20 952
117 피아노 장태숙 2008.10.20 953
116 걸레 장태숙 2008.10.20 817
115 사막은 가시를 키운다 장태숙 2008.03.17 893
114 이른 봄, 포도밭에서 장태숙 2008.03.17 924
113 늙은 어머니를 씻기며 장태숙 2008.02.06 873
112 돌 속에 깃든 자연의 세계 -가주수석전시회- 장태숙 2008.01.24 1487
» 우회(迂廻) 장태숙 2007.10.28 884
110 너의 장례를 준비한다 장태숙 2007.10.13 857
109 진주 장태숙 2007.10.13 892
108 올챙이 피는 연못 장태숙 2007.08.27 788
107 꿈의 주소로 가는 지하철 장태숙 2007.08.14 1007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31,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