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속에 깃든 자연의 세계 -가주수석전시회-

2008.01.24 20:55

장태숙 조회 수:1487 추천:74

<어깨너머로 본 인접예술>

  돌 속에 깃든 자연의 세계
   - 가주수석전시회-
                                 장태숙

한 해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날, 우리나라 ‘비원’의 풍치를 닮은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갔다. 집 근처, 패사데나 부근에 있는 그곳엔 많은 나무들로 우거진 숲과 연못, 세상의 선인장은 다 모아놓은 듯한 선인장 단지와 장미단지가 아름답고, 커다란 저택처럼 우뚝 솟은 하얀 박물관이 멋스럽다. 아마 예전엔 도서관이었던 곳을 박물관으로 바꾸면서 방문객들에게 개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 수석전시회가 열린다는 동료 시인의 초대를 받고 방문한 날은 연말이어서 인지 전시장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주로 백인이 많았지만 아시안 계통도 꽤 많이 눈이 띄었다.
‘수석이 예술의 한 분야인가?’ 라는 물음에는 순수 창작이 아니므로 약간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여러 해 수석전시회를 둘러 본 경험으로 보면 확실히 예술에 속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헌팅턴 라이브러리 수석전시회에 우리를 초청한 석상길 시인은 1968년도부터 수석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 분야에선 조예가 깊은 분이다.
‘천 배를 해야 좋은 수석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석 시인은 그만큼 자연에 많은  절을 해야(좋은 돌을 발견하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일) 좋은 돌 하나를 눈에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미국에 와서도 30여년을 가주한미수석협회를 이끌어 나가는 석 시인은 해마다 수석전시회를 열고, 이곳의 문인들을 초청하여 한국적 정서를 높이며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곤 한다.
  그가 ‘수석은 살아있다’고 말하며 ‘신의 작품’이라고 명명하는 수석에는 무늬가 있는 ‘문양석’과 옥(제이드) 등, 원석으로 된 ‘원산석’이 있고, 수석으로 가장 이상적인 돌은 까만색으로 까마귀 오(烏)자를 사용하여 ‘오석(烏石)’이라고 한다.
전시된 수많은 돌들은 차마 ‘돌’이라고 말하기엔 무색하도록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다.
돌이 자연을 빚었다고 할까? 돌 속에 자연이 오롯이 들어앉았다고 할까?

앞산, 호수, 먼 산이 하나의 돌에 얹어져 있는 ‘풍경석(Near-View Mountain Stone)’, 보는 시각에 따라 심산계곡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계곡물석(Mountain Stream Stone)’, 돌에 창문이 난 것 같은 ‘창문석(Window Rock), 돌을 통해서 피안의 세계를 본다는 ’투석‘, 산과 산 사이 폭포가 내리꽂히는 듯한 ’폭포석(Waterfall Stone)', 부드러운 선이 아름다운 ‘언덕석(Rolling Hills Stone)' 그밖에 단층석으로 금강산보다 더 정교한 절경의 모습을 이룬 돌 등은 돌이라기보다 잘 그려진 풍경화 한 점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돌 속에 무늬를 품고 있는 ‘문양석’에는 도미, 꽃게, 번개, 호박, 매화, 백조, 꽃 등등의 이름을 단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으며 수석에도 우리의 전통처럼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의 순서가 있다는 말에 놀라웠다.
수석에도 미술 작품처럼 제목이 붙기 마련인데 제목을 붙이기 힘든 작품에는 추상화처럼 ‘추상석’이라고 한다.    
돌의 태생에 대해서는 사막돌과 강물돌이 있는데 사막돌은 오랜 세월동안 모래와 바람에 깎이고 씻겨 날카롭지만 구멍이 뚫리는 등, 그 모양이 재미있다. 그에 비해 강물돌은 오랜 시간 물에 씻겨 부드럽고 매끈매끈한 특징을 지녔다.
사막돌에서는 모래와 바람의 냄새가 나는 듯하고, 강물돌에서는 물 냄새와 물살의 흐름이 감지되는듯했다. 두 종류 다 각기 다른 개성이 흥미로웠다.
    
현대수석이 비록 일본에서 들어오긴 했지만 대표적인 것은 역시 아시아 쪽이다.
미국의 백인들도 요즘은 수석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중 한국석, 일본석, 중국석이 유명한데 중국석은 아름답게 하기 위해 도구를 이용하여 그 모양을 바꾸는 경우가 있으므로 가치가 별로 없고, 일본석은 불필요한 아랫부분을 절단하여 모양을 갖추기도 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미국에서의 한국석이 비록 투박하긴 하여도 그 가치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석 시인만 해도 절단한 돌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영 찜찜하다고 하니 돌에 생명이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비록 미술작품처럼 가치가 있다 해도 팔지는 않는단다. 또한 한동안 소장을 하고 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돌이 본연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자연적이고 빛나기 때문이다.
문득 그의 돌에 대한 철학이 돌보다 더 빛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문인 중에서도 전봉건 시인이나 김동리 선생의 수석사랑 일화가 유명하다.
석상길 시인 역시 이곳 미주에서는 돌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해마다 수석전시회를 여는 석 시인 덕분에 어깨너머로 들은 수석에 관한 이야기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다.
작은 돌 하나에 아로새겨진 자연의 세계.
눈높이에 따라 바뀌는 풍경의 신비가 감탄을 자아낸다.
천 배를 해야 찾을 수 있다는 그 혜안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2008년 새해를 앞두고 2007년을 정리하며 찾은, 수석전시회에서 만난 신의 작품들로 인해 ‘헌팅턴 라이브러리’ 주차장까지 걸어 나오는 길의 돌들이 무심히 보아지지가 않았다.
전시장을 다녀 나오는듯한 사람들의 발걸음도 모두 그러한 듯하다.

                            - 강남시 2008년 1월호 -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돌 속에 깃든 자연의 세계 -가주수석전시회- 장태숙 2008.01.24 1487
125 커피 향 젖은 봄날 장태숙 2009.07.08 1220
124 미주문단, 큰 별이 지다 (조사) 장태숙 2010.02.14 1192
123 물 위에 뜬 도시 장태숙 2010.01.29 1126
122 먼 길 떠나는 김수환 추기경 장태숙 2009.02.20 1073
121 꿈의 주소로 가는 지하철 장태숙 2007.08.14 1007
120 전화 장태숙 2009.10.16 987
119 피아노 장태숙 2008.10.20 953
118 빈 집 장태숙 2008.10.20 952
117 이른 봄, 포도밭에서 장태숙 2008.03.17 924
116 자목련, 자목련 장태숙 2009.02.11 910
115 새해에는 장태숙 2011.01.20 893
114 사막은 가시를 키운다 장태숙 2008.03.17 893
113 진주 장태숙 2007.10.13 892
112 우회(迂廻) 장태숙 2007.10.28 884
111 늙은 어머니를 씻기며 장태숙 2008.02.06 873
110 너의 장례를 준비한다 장태숙 2007.10.13 857
109 걸레 장태숙 2008.10.20 817
108 겨울 발길이 머무는 곳 장태숙 2003.12.07 812
107 그리움은 단풍처럼 붉어지고 장태숙 2006.11.07 798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31,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