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포도밭에서

2008.03.17 19:44

장태숙 조회 수:924 추천:79

    이른 봄, 포도밭에서
                                장태숙

소노마 카운티 언덕의 벌거벗은 포도나무들
울퉁불퉁한 뼈다귀들이 도열해 있다
발등에 차오르는 유채꽃 노란 강물
몸 속 깊이 끌어올려 갈증과 허기 채우고
한기에 담요 덮듯 서로 마음 물고 등 기댄
이른 봄

지금은 잠시 생각에 머물며 침묵할 때
달음질치던 삶을 안으로 안으로 불러들여 다둑일 때

깨어날 즈음
갑자기 불 켠 듯 온 몸의 눈 활짝 뜰 즈음
모든 것 다 내준 물기 가신 마음이
너무 눈부시지 않게
포도나무 발등에 살랑살랑 차오르는 유채꽃
저 영혼의 맑은 강물
두레박으로 퍼 올려 속살부터 천천히 적셔줄 일이다
닦아줄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만(灣) 푸른 바다
소노마 언덕에 올라서서 시퍼렇게 불침번 서는
이른 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6 돌 속에 깃든 자연의 세계 -가주수석전시회- 장태숙 2008.01.24 1487
125 커피 향 젖은 봄날 장태숙 2009.07.08 1220
124 미주문단, 큰 별이 지다 (조사) 장태숙 2010.02.14 1192
123 물 위에 뜬 도시 장태숙 2010.01.29 1126
122 먼 길 떠나는 김수환 추기경 장태숙 2009.02.20 1073
121 꿈의 주소로 가는 지하철 장태숙 2007.08.14 1007
120 전화 장태숙 2009.10.16 987
119 피아노 장태숙 2008.10.20 953
118 빈 집 장태숙 2008.10.20 952
» 이른 봄, 포도밭에서 장태숙 2008.03.17 924
116 자목련, 자목련 장태숙 2009.02.11 910
115 새해에는 장태숙 2011.01.20 893
114 사막은 가시를 키운다 장태숙 2008.03.17 893
113 진주 장태숙 2007.10.13 892
112 우회(迂廻) 장태숙 2007.10.28 884
111 늙은 어머니를 씻기며 장태숙 2008.02.06 873
110 너의 장례를 준비한다 장태숙 2007.10.13 857
109 걸레 장태숙 2008.10.20 817
108 겨울 발길이 머무는 곳 장태숙 2003.12.07 812
107 그리움은 단풍처럼 붉어지고 장태숙 2006.11.07 798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31,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