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2008.10.20 08:15
빈 집
겨우내 접어 두었던 비치파라솔
이중으로 된 지붕의 벌어진 헝겊과 헝겊 속
살대에 감쪽같이 얹힌 새 둥지
비치파라솔 안에 집을 짓다니!
추워 웅크리고 있는 동안
뒷마당에 발걸음 멈춘 동안
너희는 부지런히 세상을 돌며 집을 지었구나
가장 보드랍고
가장 연한 마른풀 거두어
눈물 나는 집 한 칸 마련했구나
가장 따뜻한 제 몸의 깃털 뽑아
미래를 지었구나
‘흰 배 지빠귀’ 닮은 새의 엄지손톱만한 새알 다섯 개 힘겹게 알껍질 깨트리고 세상 밖 나왔을 때 호기심의 손길들 쿡쿡 건드리고 같은 종족인 새들마저 주위를 맴돌 때 어미 새의 심장 덜컥덜컥 내려앉았을 것이다 애간장 끊어질 듯 했을 것이다 금줄이라도 쳤어야 했을까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새의 일가족
사산한 새알 하나만이 오래 된 빈 집에 귀퉁이 떨어진 밥공기처럼 놓여있다
- 2008년 <시작> 가을호 -
겨우내 접어 두었던 비치파라솔
이중으로 된 지붕의 벌어진 헝겊과 헝겊 속
살대에 감쪽같이 얹힌 새 둥지
비치파라솔 안에 집을 짓다니!
추워 웅크리고 있는 동안
뒷마당에 발걸음 멈춘 동안
너희는 부지런히 세상을 돌며 집을 지었구나
가장 보드랍고
가장 연한 마른풀 거두어
눈물 나는 집 한 칸 마련했구나
가장 따뜻한 제 몸의 깃털 뽑아
미래를 지었구나
‘흰 배 지빠귀’ 닮은 새의 엄지손톱만한 새알 다섯 개 힘겹게 알껍질 깨트리고 세상 밖 나왔을 때 호기심의 손길들 쿡쿡 건드리고 같은 종족인 새들마저 주위를 맴돌 때 어미 새의 심장 덜컥덜컥 내려앉았을 것이다 애간장 끊어질 듯 했을 것이다 금줄이라도 쳤어야 했을까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새의 일가족
사산한 새알 하나만이 오래 된 빈 집에 귀퉁이 떨어진 밥공기처럼 놓여있다
- 2008년 <시작> 가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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