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란다 2.

2004.05.18 15:50

장태숙 조회 수:575 추천:40

윌셔 길 한 모퉁이
뼈에 아픈 피붙이 같은 한국 총영사관
좁은 어깨가 어둡다
그 곁 바짝 붙어
보라색 꽃 피우는 자카란다
4월 발걸음 사라 진 자리에
피멍 든 얼굴 들고
독립기념일 폭죽 터지 듯
한숨 쏘아 올리듯
그 기막힌 음울(陰鬱)의 분수
글썽이며 떠받치고 서있는 오후

하루종일 배고픈 허기가
느리게,
혹은 눈물나게 어슬렁거리는 길
중간중간
꽃잎들 흩어져 풀썩풀썩 몸 뒤집고
모란각 냉면전문점 초록색 한글간판
푸른 이파리처럼 팔랑거리는
이국의 계단
목 울대 범람한 붉은 강물이
꾸역꾸역 바닥을 적신다

진통제 투여 된 몸처럼
간신히 버티는 삶이
관절마다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나는 신호등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독한 위스키 같은 시간들 지나면
여린 발바닥에도
하얀 실뿌리 내릴 거라고
슬픔으로 반죽한 생의 그늘
여물어질 거라고
터무니없이 믿는다

보라색 핏물 가득한 보도를 따라
덫에 걸린 메마른 목숨이
밭은기침을 하는 도시의 사타구니
구걸하는 동족(同族)의 모습에
조금 슬프고
내 모습에 더욱 슬픈
로스엔젤레스의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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