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3 13:40
벚꽃 지고 있는 방 한 구석에
백색의 가루와 귀를 막은 악몽이
전선을 지키듯
환각의 밤
그의 담배 연기 속으로
팔루자 전우들이 매케하게 들어서고
꽃들의 목을 벤 붉은 어머니의 환영이
그의 목을 따라 다녔다
꽉 손에 쥘 수도 없는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강박의 몸을 꿰뚫고 나갔는데
그를 조준하던 꽃의 유령들을 조준한다
시야를 가리며 저만치 멀어져가는
봄의 경직된 눈이 아파트 난간 위에 길게 풀어지고 있다
-전희진의 ‘늦은, 봄’ 전문
이 시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아쉬움과 불안감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늦은, 봄’은 청춘과 열정이 지나가는 시간이다. ‘늦은, 봄’은 이른 봄의 희망과 기대감이 사라지고 초조와 상실감이 고조되는 시간이다. ‘시야를 가리며 저만치 멀어져가는/경직된 봄의눈이 아파트 난간 위에 길게 풀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런 시간을 감각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 시간을 미주 시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몽환적인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또한 이 시는 영문시 Late, Spring’과 함께 발표되고 있는데, 이처럼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에 발표하는 이중 언어 문제는 미주 한인시가 처한 현실 (한글보다는 영어에 익숙한 한인 2, 3세대들의 증가)과 관련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근대적 의미의 시간은 인간을 계량화하고 기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간은 긍정적으로 보면 인간을 경제적으로 살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착취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시간은 고마운 면도 있으나, 인간의 삶을 통제하면서 결국 불안감을 주는 존재이다.
--외지, 2018년 ‘외지’ 회원시 시평에서,이형권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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