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4 17:07
각시꽃/전희진
하얀꽃이 물 속에 갇혀 있다
하얀꽃이 길다란 원통형 유리화병에 갇혀 있다
하얀꽃이 그를 길러준 푸른 가지에 갇혀 있다
테이블 중앙에 놓여진 꽃병이
들떠있는 하객들의 눈길에 갇혀 있다
홀을 가득 메운 흥겨운 댄스곡에
젊은 남녀 들러리들
미끄러져 들어올 때마다
수십 쌍의 둥근 테이블과 의자들이 들썩들썩
저희들이 더 난리법석이다
마이클 부블레의 노래에 맞추어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와 말쑥한 차림의 신랑이 우아하게 춤을 춘다
순간, 모든 동작이 멈춰섰다
웨이터의 손동작이 멈춰섰다
하객들의 손목시계가 멈춰섰다
한평생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듯 신랑 신부가 춤을 춘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춤을 춘다
보랏빛 조명만이
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 갈듯 집요하게 그들 뒤를 따른다
신부 아버지 눈이 괜시리 젖는다
하얀꽃이
인형처럼 길다란 속눈썹을 늘어뜨린 각시꽃이
우아하게 유리화병에 갇혀있다
-문학마당, 201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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