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 마을의 소똥 모닥불

2004.05.02 15:11

유금호 조회 수:484 추천:16

마사이 마을의 말린 소똥 모닥불


유 금 호


몇 해 전 12월, 아프리카 암보셀리에서 며칠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날 나는 만년설을 이마에 인 킬리만자로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 마사이족 마을,소똥으로 지붕과 벽을 바른 늙은 전사의 집 마당에서 말린 소똥으로 모닥불 위에 악어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아프리카 사바나 위로 내려앉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사이족 아이들과

살아 있는 소의 동맥에 대롱을 꽂아 그 피를 주식으로 하는 마사이족 사람들은 일부다처제.

붉은 색 망토에, 소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대롱 하나. 마사이 소년은 창 한 개만 들고 사자를 잡으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사자를 잡아 마을로 돌아와야만 진정한 전사로 취급되어 가정을 가질 수 있는 그들 오랜 전통은 사냥을 하다 죽고, 도시로 떠나버린 남자들로 해서 결국 일부다처의 삶을 만든 것이라 했다.

정부의 정책 때문에 사자를 함부로 지금은 죽일 수 없지만, 그들 의식 속에는 여전히 사자 사냥은 마사이 전사의 몫이고, 지상의 모든 가축은 세상을 만든 렝가이 신(神)이 마사이족에게 주었다는 신념 때문에 다른 종족이 기르고 있는 가축들도 필요하면 언제나 자기들이 가져와도 된다고 했다.

잠보, 잠보 사나.(인사)

하바리 야코?(기분이 어떠세요?)

앞니가 하나도 없는 늙은 전사는 익은 악어 고기를 자꾸 권하며 웃어 보였다.

모닥불 반대쪽에 언제 왔는지 사바나 원숭이 암놈 한 마리가 죽은지 오래된 제 새끼를 품에 안은 채 낯선 이방인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원숭이 종류들은 새끼가 죽어도,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끼의 시체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버리지 않고 품속에 품고 다닌다고 한다.

어둠은 넓은 사바나를 천천히 덮어가고, 이제 낮 동안 보이지 않던 야행성 동물들이 활동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갔다. 하이에나 두 마리가 마사이족 사람들이 로꼬니라고 부르는 우산아카시아 밑동아래서 눈에 파랗게 불을 켠 채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내게 체체파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숲과 마사이 목동들이 사는 지역은 철조망이나 다른 표시가 없어도 그 경계가 지켜지는데, 체체파리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덥고 습기 찬 삼림지대에 번성하는 이 파리는 야생 동물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지만, 사람이나 사람이 기르는 가축은 이 파리에 물리면 트리파노소마증이라는 치명적 수면병에 걸려 몰려오는 잠에 빠져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처음부터 그렇게 제 분수 속에 살아가게 되어 있는데, 필요 없이 사람들이 이것, 저것을 만들고 정해서 세상을 복잡하게 한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에서 가져간 팩 소주를 노인에게 권했다.


히 니 니니? 아산테 사나.(무엇인가요? 정말 고맙습니다)

포레 포레(천천히)

노인은 낯선 이방인이 자기와 마주앉아 말린 소똥 불에 구운 고기를 맛있게 먹는 것이 기쁘고,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는 계속 아산테 사나...아산테..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웃어 보였다.

늙은 마사이 전사에게 세계는 그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치관에 의해 서 단순하고도 평화롭게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근대적 부부개념이나, 국경의 개념, 현대적 위생에 대하여 밤을 밝혀 이야기 해 보아야 그것은 난센스일 뿐, 죽은 새끼를 안고 다니는 어미 원숭이에게 새끼가 죽었고, 죽은 것은 버려야한다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맑은 햇빛 아래서 초원의 야생동물들을 구경하고 있을 그 무렵,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다.

같은 시간인데도 지구의 한쪽에서는 엄청나게 눈이 내리고, 또 한쪽은 한국의 5월 같은 부드러운 햇빛이 내려 쬐고 있다는 사실이 한 순간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곳이 겨울일 때 여름의 공간, 한 쪽이 밤일 때, 한낮인 공간, 그 다양성에 대한 생각을 여행을 자주 하면서 나는 참 많이 느끼게 된다.


어디 그것뿐인가. 맨 발에 소똥 속을 아무렇지 않게 뒹구는 그곳 마사이 아이들에게 우리아이들이 흔하게 먹는 사탕을 먹이면 충치에 이빨이 망가지고, 자칫 소아당뇨병까지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세상은 참으로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움직여 가고있다.

사람들의 생활 역시 민족에 따른 다양한 오랜 관습이나, 종교적 가치관, 개인적인 차이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옳다고 믿고 있는 모든 습관과 상식이라는 것 자체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을 여행을 하면서, 또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더하게 된다.









눈앞에 보여지는 기준, 살면서 관습으로 길들여진 내가 생각하는 가치, 내가 옳다고 생각해 온 집착들이 때로 무의미하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별, 지구 위에서도 얼마나 다른 세계들이 존재하는가,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들 마음속에 일어나는 상당히 많은 갈등이 해소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이승을 하직하고 언제인가 한번을 떠나야하는 죽음의 길에 입는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어차피 남루해진 육신을 벗어버리는 마당에 이승에서 모든 집착이야 한 가닥 연기 같은 것.

작은 집착을 버리면 우리는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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