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샘 제 9 장

2003.07.13 12:01

전상미 조회 수:1554 추천:126

LA 7월의 날씨는 무더웠다.파란 하늘에서 내리비치는 태양은 겨우내 파랗게 만들었던 산을 온통 황금빛으로 태우고 있다.
고은미의 마음도 황금빛으로 타고 있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자신의 삶이 억망으로 변해가는 느낌 때문이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은것은 사랑을 아니 한 것보다는 났다 라는 어느분의 시 구절이 떠 오른다. 강진우와의 짧은 만남이지만. . .그 만남을 통하여 사랑했다고 고은미는 생각했다. 남녀가 만나서 욕망의 밤을 보냈다고 하면 자신에게 부끄럽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서울에서 돌아와 강진우에게 전화를 했을때 강진우에게서 이상한 기분을 감지했다. 여자의 직감이었다. 그가 청월이와 자주 만난다는 느낌이다.
고은미는 강진우와 가졌던 날들에 대하여 후회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다른 여자와 만난다 해도 그와 함께 지냈던 그 순간은 진실이었으니까. . .고은미는 자신의 진실만 귀중하게 간직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가 진실이 아니었으면 그 자신에게 미안함을 가질 것이다. 그의 섬세했던 배려와 그의 뜨거웠던 몸짓은 진실이리라 믿는다.
더위를 이기는 만큼 힘들게 보내는 고은미에게 현 박사가 7월 4일 독립기념일 휴일에 고은미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의 집은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팔러스 버디스 에 있다.
삼천 스퀘어피트 짜리 단층집이다. 파란잔디와 온갓 꽃들로 가득한 정원은 아름답다. 바닷가로 팜트리 두 구루가 나란히 서 있는게 보인다. 팜트리 사이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의 피로를 푼다고 현 박사가 한 말이 떠 오른다.
고은미가 도착해 보니 이미 현 박사와 같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들이 부부동반으로 대여섯쌍이 와 있었다. 모두가 미국인들이다. 혼자 살지만 현 박사는 해마다 미국독립기념일에는 정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했다.
"은미 어서와"
반바지와 미국성조기가 그려져 있는 티셔쓰를 입은 현 박사가 고은미를 껴 안고 환영했다.
정원에 있는 다른 교수들과 그의 아내들은 이미 여러번 만나서 아는 사이였다. 하늘색 소매 없는 원피스를 입은 고은미는 그 중에서도 화려한 주인공이 되었다. 핫더그와 고은미가 준비해 간 갈비를 굽는 샘새가 나자 모두가 와우 하면서 먹었다. 두어집 건너 집에서도 바베큐 파티가 한참이라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와인을 마시고 비어를 마셨다. 해가 지면서 바다와 하늘에 온통 주홍빛을 뿌린다. 모두가 지는 해를 보면서 감탄한다.
고은미는 해가 바다 넘어로 숨어버리자 가슴에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왔다. 환경이 주는 감상때문일까. . .
밤 열 시가 되어 모두들 돌아가고 고은미만 남았다. 그들이 같이 청소를 해 주고 갔기 때문에 편했다. 정원 끝에서 흐리게 비치고 있는 불빛속에 현 박사와 고은미는 의자에 앉았다. 사위가 조용해져 갔다. 해가 숨어버리자 바다바람이 싸늘해 현 박사는 두꺼운 잠바를 가져다 고은미의 어깨위어 덮어 주었다. 고은미는 그러는 현 박사가 오빠처럼 느껴진다.
집안에서 현 박사가 잠바를 가지러 가면서 틀어놓은 음악이 부르럽고 감미롭게 정원으로 새어 나왔다.
하늘에 별들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현 박사는 가만히 앉아 있는 고은미를 바라본다. 혼자 살면서도 당당하고 명랑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쓸쓸하고 외로운 모습이 고은미의 몸에서 풍겨 나왔다.
"은미. . .나에게 말 하기 싫어?"
은미는 고개를 돌려 현 박사를 바라본다.
은미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별빛에 부루루 떨면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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