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HOME!

2004.04.01 04:14

전지은 조회 수:811 추천:78

며칠 전 이곳은 'Military Appreciation Day'이었다. 북가주에선 낯설기만 만한 기념일이다. 콜로라도 각 지방, 특히 군부대가 인접해 있는 곳들은 아침, 정오, 저녁 뉴스 직전에 자막 가득 "WELCOME HOME!"이란 프랭카드를 띄우며 군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살아 돌아 온 이들을 환영했다. 컨벤숀 센터를 가득 채운 군인 가족들. 꽃을 들고 풍선을 들고. 아들과 딸을 둠직한 노부부와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부인, 아이들의 손을 잡고 두리번거리며 낯익은 얼굴을 찾는 남자.
군인들이 식장으로 들어와 거수 경례를 하고 성조기가 올라가고 가족들을 찾아 흩어지며 미 국가가 연주되었다. 가족들을 찾아 오래고 깊은 포옹을 나누고 키스를 나누며 눈물을 흘렸다. 훌쩍 커버린 아이, 머리모양이 달라진 아내, 더 연로해지신 부모님. 구리 빛 얼굴을 비비다간 쳐다보고 만져 보며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 얼마나 마음 졸이며 이 시간을 기다렸겠는가. 재회의 시간을.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배후자가 떠나 있었을 때 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이중 역할을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그리고 가족의 연계성과 가치를 진실로 깨달았다고.
살아서 귀환한 용사들! 그러나 그 기쁨의 뒤편에는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도 너무나 많다. Port Carson은 이라크에 많은 용병들을 보냈다. 조국인 미국의 안녕을 위해. 미국의 적으로 치부된 이라크와의 전쟁은 이미 일년을 넘고 있으나 확인된 살상용 생화학 시설이나 핵무기 시설을 아직 찾지 못했다. 또한 9.11도 미리 방지 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 요즈음 미국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이고 보면 계속되고 있는 전쟁의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사담 후세인을 잡은 지도 벌써 몇 개월.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숨어 지냈으며, 알카에다와는 어떤 관련이 있고, 9.11은 어떤 방법으로 사주를 했는지에 대한 죄상이 일일이 공개되고 있지 않는 오늘의 상황에서 젊음과 목숨을 송두리째 담보로 잡혔던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 몰아야했던 당위성은 무엇인가.
이라크에도 미국이 사주하는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이라크에서는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죽는다. 난 정치를 잘 모른다. 전장에 나가 있는 군인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전장의 상황을 방송을 통해 전해들을 때마다, 볼 때마다 진실로 기도하는 자세가 되었었다. 어느 어머니가 사지에 나가있는 아들을 가슴 조이지 않고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 단지 지금쯤은 평화로워야 하고 이만한 희생이면 족하지 않느냐고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살아 돌아온 이들은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그들은 30일 간의 휴가를 갖고 다시 Port Carton으로 돌아와 나머지 군인의 임부를 본토에서 계속한다고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처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9.11 그날, 쌍둥이 빌딩 안에는 세계 모든 민족이 있었다. 알카이에다는 꼭 미국만을 향해 선전 포고를 했던 것인가. 그 빌딩 안엔 이라크인도 있었고, 이란이나 이스라엘사람들도 있었다.
군인들이 살아서 돌아 온 것을 환영하는 이 시간, 이쯤에서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화면 가득히 노란 평화의 리본을 띄운다.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넷이 되고, 화면 가득히 작고 노란 리본들이 물결을 이룬다. 기도하는 가슴이 그 위에서 함께 물결친다.

(한국일보 목요칼럼,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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