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유감

2004.08.24 22:56

전지은 조회 수:769 추천:102

                                            
  '들어오면 전화하렴'
친정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화에 녹음되어 있었다. 바로 어제 통화를 했는데 웬일이 실까 싶었지만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네가 사 오라는 물건사갈 사람한테 돈 줬다. 네 친구네 가게에 들려서 전화가 왔더구나. 지난번 나왔을 때 사가던지.....어제 전화 할 때 그런 이야기 없더니.....어떻게 딱 달라는 만큼만 주냐. 네 이웃에 산다는데, 몇 만 원 더 주었다.'
  무슨 소리냐고, 내가 누구에게 뭘 부탁했느냐고 다그치듯 여쭈어 보았다.
  '네 이웃이 라데. 6집 떨어진 곳에 산다며. 삼성 콜로라도에 다닌다고. 이름은 정 수구라고 하던데. 한 삼 십될까, 얼굴 동글동글하고...'  
  생소한 이름에, 이곳엔 삼성 지사가 없음은 물론이요, 이사와 고향사람을 만난 적이 없고 보면 이것은 뭔가 잘못 된 것이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나의 이름을 들먹이고 내 친구의 가게에 들려 나를 잘 아는 척 내 이름을 팔며 엄마에게 연락을 한 사람은 분명, 나의 인터넷 홈페이지인 문학서재에 와 본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야 나의 고향이나 친구들 모임의 중요한 장소가 되는 친구 가게의 이름을 알 수 없을 테니까.
  인터넷 문학서재를 열고 처음에는 신기한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시간만 나면 열심히 들어가서 일상의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남의 집들도 기웃거리며 쓸데없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올라오는 글마다 리플을 달기엔 컴퓨터가 익숙지 않은 나에게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고 남들처럼 음악에, 아름다운 그림까지 퍼서 올리기엔 능력 부족이었다.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운영해 가는데도 늘 신경 줄은 그곳에 가 있는 듯 했다. 간혹 같은 문학서재에서 글이 올라오는 족족 숨쉴 여유도 주지 않고 댓글을 올리는 이들도 만날 수 있다. 아예 다른 일상은 접고 인터넷 속에서만 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그 사람들의 본업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말해 흥미가 감소 된 것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서재는 유리 상자가 되어 일거수 일투족을 드러내 보였고 비밀스러운 것들이 드러나 보였을 때의 쑥스러움이 부담스러웠고 염려스러웠다.
  그렇게 염려하였던 대로 난, 사생활을 이용당하였다. 나를 아는 사람, 문학을 사랑하는, 특히 미주문학인이 주고객이었을 내 인터넷 문학서재. 들어와 본 사람이면 누구나 나의 근황이나, 현재 살고 있는 곳, 또는 이사를 온 이유까지 알 수 있게 되 있다. 또한 아이디가 요구되지 않는 일반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사이트였으므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정보를 이용하기 쉬웠을 것이다.
  많은 액수의 돈을 요구하였더라면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나에게 확인 전화를 하셨을 것이다. 확인 전화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액수를 필요하다고 한 사기꾼은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사람. 미국에 사는 딸의 이웃이라는 한마디에, 나의 근황을 잘 안다는 사실에, 어이없이 얼마의 돈을 내주고 마신 어머니. 먼길 왔으니 점심이나 들고 가라며 어머니가 간곡하게 말씀 하셨지만 갈 길이 바쁘다며 서둘러 떠나더란 다.
  인터넷과 전화 사기, 특히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가 근래의 사회문제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나의 가족이 그 속에 포함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렇다고 인터넷 문학 서재를 닫을 생각은 없다. 그곳은 내 작품들을 날짜별로, 부분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관하는 장소이며 지나던 문인이 잠시 들렸을 때 나의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는 자기 P.R. 시대이다.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여 자신을 알린다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 일수는 없다. 다만 유용해야 할 개인정보를 나쁜 방향으로 이용하는 부류들이 있음에 우리들 스스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을 뿐.
  또한 내게 있어 인터넷 문학 서재는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문우들 간의 좋은 만남의 장소이다. 다만 이제부턴 사생활 노출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건조하더라도 필요한 이야기들만 할 것이며 일상사들을 넋두리처럼 풀어놓지 않을 것이다. 다른 분들의 사이트에 들어갔을 때도 나와 비슷한 경우, 아니 우리 어머니처럼 황당한 경우를 당하시지 않도록 그분들의 사생활이 보호되는 차원에서만 이야길 해야겠다.
  정보의 세계화,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늘도 나는 허우적거리지만 똑같은 일을 두 번 당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려한다.

(한국일보, 목요칼럼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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