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Las Vegas!

2005.01.17 09:58

전지은 조회 수:791 추천:87

  친구들과 이멜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근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번에 온 것은 더 재미있었다. 연중 행사인 라스베가스 여행을 올해도 어김없이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테마는 빨간 구두에 검은 드레스, 그리고 진주 장식. 이런 성장을 하는 날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가는 저녁' 이라고 알려 왔다. 친구들의 산타크루즈를 떠나는 날짜와 시간, 머무를 호텔과 이박 삼일의 일정이 적혀져 있었다.
  해마다 늦가을이면 대 여섯 명의 아줌마들은 의기투합하여 떠났고 여행길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여자들끼리만 떠나는 여행, 재미도 있지만 서로에게 솔직해 지며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엔 같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을 했고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들 속에 섞여 멜팅 팟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을 아니었다.
  그러나 함께 비행기를 타며 달뜬 가슴으로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큰소리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밤을 새우며 와인 잔을 기울이며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나누기도 하며, 네온이 진 거리를 걸으며 일상의 뒷모습을 나누기도 했던, 우리들은 울타리를 벗어나 시간을 함께 지내며 점점 가까워졌다. 진실로 가슴을 열고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상대방도 똑같이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혹자가 왜 하필, 여행지로 도박과 환락의 도시인 라스베가스를 택하였느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다. 다만 그곳은 스물 네 시간 잠시도 쉬지 않고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엔터테인먼트가 있기 때문, 이라고 할까 아니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갈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할까.
  첫해에는 낮 시간 동안 걸어서 했던 카지노 순례가 여행의 주목적이었다. 지중해에서 곤돌라를 탔고 멋진 미술전시회를 참가했음은 물론이고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허드슨 강을 지나 파리의 에펠탑을 돌아 알라덴 요술 궁전으로 초대되었다. 요술 카펫을 탔던 이유일까 어느새 이집트의 피라밋을 지나 인도의 해변가에서 피리 소리에 맞추어 배꼽춤을 추는 댄서들이 되 있었다.
  해가 저물면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현란한 빛을 뿌리치지 못한 채 한판의 승부를 건 '도박'의 유혹에 빠진다. 블랙잭 테이블에서, 쿼터를 넣는 기계 앞에서, 뺑뺑이판을 돌리는 룰렛번호 판에 기대서서, 서로에게 손뼉을 치고 때론 이제 그만 자리에서 떠날 것을 권유하기도하며 밤늦게까지 환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돈을 잃고 따는 노름을 통한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들러내 놓게 된다. 스스로 솔직해 지는 것은 사람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어졌던 다음 해에는 이미 카지노 순례를 마쳤기 때문에 좀 심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 다음엔 음식 순례. 그 다음 해엔 각종 쇼, 그 다음엔 샤핑, 그리고 가까운 곳의 자연 경관까지 이박 삼일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올해도 헤어질 때 내년을 약속했다. 내년엔 라스베가스를 돌아 내가 살고 있는 이곳까지 경유해 가겠다는 야무진 계획들을 이미 세우고 있다. 아직 다음 테마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년 내내 이멜을 주고 받다보면 다시 또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으로 잡혀질 것이다.
  몸은 이곳에 있어도 마음은 늘 그곳에 있는 나의 경우엔 일년동안 병원 이야기를 모았다 들을 수 있고, 서로 변해 가는 모습들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이 길고 네온의 휘황함에 유혹되어 돌아오는 길의 지갑이 비었고 즐비한 음식에 몸무게의 파운드가 좀더 불었으면 또 어떠한가.
  달빛도 거리의 황홀한 빛에 쌓여 제 모습을 잃는 라스베가스!
  가끔 일상의 무료함을 깨어버리고 현란함에 쌓여 겉치레를 벗어 던진 채 손뼉 치며 깔깔대고 웃는 나를 그곳에서 만난다.


(한국일보,목요칼럼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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