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마을 가는 길

2003.07.13 00:32

전지은 조회 수:520 추천:51

오랜만의 자동차 여행. 최종 목적지인 싼타페를 제외하고는 정해진 일정이 없이 떠난 길이었다. 새로운 곳을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달뜬 마음은 유년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푸르고 광활한 캘리포니아의 산과 들을 지나 애리조나로 들어서자 사뭇 낯선 풍경들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돌산들의 파도를 넘으면 폭풍의 눈같이 고요한 수평의 암반 메사를 만난다. 이어지는 붉은 모래바다, 지평의 끝은 어디인지 알 수 없고 가끔 하늘의 모양을 바꾸는 것은 오랜 세월을 견뎌 냈음직한 Saguaro의 선인장들이다. 성나게 돋아 있는 긴 가시들은 작렬하는 태양에 도전이라도 하듯 기세가 만만치 않다. 어디를 둘러봐도 숨이 탁탁 막히는 사막이다.
Walnut canyon으로 이어지는 작은 도로로 들어선다. 인적이 끊긴 적막함 속으로 초대된 듯 주위는 온통 고요하다. 갓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붉은 모래톱의 이야길 듣는다. 조금 더 가자 그곳엔 정말 사람이 살았을까 싶은 산세도 거친 깊은 계곡이 나타난다. 주립공원인 것으로 봤을 때 오래된 유적지이며 여행객들이 늘 찾는 곳임에 틀림이 없지만 아직 여행 철이 이른 탓인가 괴괴하기까지 한 계곡, 안내소를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레인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건너편은 수 백년 전에 원주민 인디언들이 살았던 곳이란다. 산세로 보아 어떻게 올라갔을까 싶은 가파른 절벽들. 그 사이사이로 동굴의 입구가 보인다. 반대쪽으로 뚫린 곳은 없다고 안내문은 적고 있다. 그렇다면 그 옛날 인디언들은 영화 속의 타잔처럼 나무 가지를 타고 그곳까지 날아갔을까. 쫓기고 또 쫓기다 찾아 들었을 마지막 은신처. 사막의 끝은 산세가 깊은 계곡이었고 오아시스 대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다음날, 이번엔 아직도 옛날 원주민식 생활을 한다는 작은 마을을 만난다. 하늘밑 첫 동네라는 뜻일까, 스카이씨티라는 의미의 Acoma란 이름을 붙였다. 그곳엔 13가구가 산다는 안내자의 말을 들으며 먼발치에서 메사 위에 고적처럼 남아있는 마을을 둘러본다. 바위산, 뭉게구름, 대평원에 버금가는 모래바다, 그리고 에메랄드빛의 하늘이 연출해낼 수 있는 지고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겠거니와, 넋을 놓은 아름다움 저쪽에서 메아리처럼 끈기며 이어질 듯 들려오는 애절한 음절 한가락이 감지되는 것은 지나친 감상이었을까?
그러나 제한 구역 속의 원주민들은 자연과 함께 보호되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어 '보호'라는 미명 아래 오지의 땅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니가 하는 기우가 들었다. 많은 인디언 보호구역들이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유타와 콜로라도의 남부 쪽에 흩어져 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그들의 진 모습을 일일이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몇 군데 들러본 곳, 인디언 보호 구역,은 숨막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있으되 주거환경이 험하고 거칠었으며 문명과는 거리가 멀게 조악했다. 도자기를 굽고, 바구니를 만들고, 고운 문양의 손틀 보자기들을 짜면서 여행객들의 눈요기가 되고 있는 원주민 인디언들.
자유와 평화가 있다는 곳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도시의 뒤엔 아직도 빼앗긴 땅을 아쉬워하며 가슴을 쓸어 내리는 이들이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더 아프고 견디어야 그들의 자유를 보장받고 기회를 인정받는 시간이 올 것인가. 독립 기념일을 지냈다. 곳곳에서 축포를 터트리고 화려한 불꽃은 제 몸을 사르며 밤하늘 가득히 수놓았다. 미국의 진정한 독립은 이 땅의 주인인 원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독립을 똑같은 기준으로 보장할 때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일정한 구역 내에서 그들만이 가지도록 되어 있는 법규가 아닌, 같은 기회와 평등 조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자유와 권리, 평화 그런 것들.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하늘 밑 첫 동네, 언젠가 그곳에도, 인디언들의 당당한 기백을 자랑하며 화살을 쏘거나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릴 수 있는 신선한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빼앗긴 땅에도 봄은 왔고' 화려한 꽃을 피우고 지는 계절들은 왔다가 가는 것을 오늘도 반복하고 있음으로.

(한국일보 7월 10일, 목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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