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2003.10.21 03:08

전지은 조회 수:663 추천:49

'내 키를 어디다 둔 거지. 약속 시간이 다되었는데...' 아래층 위층, 부엌과 침실, 화장실, 차고까지 몇 바퀴 돌자 화장한 얼굴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어휴, 더워' 손으로 얼굴을 쓱 문지르는데 10개도 더되는 열쇠들은 커다란 팔찌같이 생긴 금속성 고리에 달린 채 눈앞에서 춤을 춘다. 소리도 요란하게 합창이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팔목에 끼고 몰랐단 말이지...휴, 중증이네'
어느 지인의 푸념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것은 처음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땐 정말 그랬을까 싶어 배를 잡고 눈물까지 흘리며 폭소를 터뜨렸다. '정말 중증이네'를 연발하며 난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을 장담했다. 열쇠꾸러미를 손목에 끼고 아래 위층을 올라 다녔을 그녀, 살이 안찌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소동이후 현관입구에 열쇠를 거는 고리를 만들어 놓았고 전화기와 달력 옆에는 꼭 메모지가 있단다.
새벽 전화는 늘 다급한 목소리다. "벌써 7시가 훨씬 넘었는데 네가 아직 출근을 안 해서...혹시 사고 일까봐...아직 잔 거야? 잊었어? 오늘 오버타임 하기로 한 거?"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를 연발하며 곧 나간다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전의 통화가 그제야 기억이 났다.
물을 뿌렸는지 샤워를 했는지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헐떡거리며 출근한 가쁜 숨소리에 친구들은 한마디씩 한다. 찬물이라도 마시던지 짙은 커피라도 좀 마셔야 하지 않겠어, 정신이 맑아지게.
외할머닌 아흔이 넘으셨어도 혼자 전화를 거실 수 있으실 만큼 기억이 남 다르셨다. 어디에 뭘 두셨는지 정확히 기억하셨고 두 번 찾는 일은 거의 없으셨다. 엄마가 출근을 하시고 나도 학교를 가고 집안 일이 대충 끝난 오후면 당신 혼자 화투놀이를 하셨다. 하루의 운수를 떼어 보는 것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두목을 떼어 육 백을 치시거나 나라도 이른 하교를 해 오면 민화투를 치자고 하셨다. 가끔 동전을 한 움큼 쥐어 주시며 따먹기를 하자고도 하셨다.
아흔 셋을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정신 한번 놓아 보신 적이 없으셨던 할머니를 닮으셨을까 엄마도 아직 건망증과는 상관이 없으시다. 정년 퇴직 후 누구 못지 않게 젊음을 유지하시며 말 그대로 명랑하게 사신다.
두 분의 피 내림 있고 그분들을 닮았다면 나도 그래야 할 것인데 아직 할머니의 반밖에 못산 이 나이에 벌써 심각한 중증이라니. 직장에선 영어만 해야지, 한국말로 글도 써야지 두개의 문화와 두 가지의 말로 사는 일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렇다는 둥 변명을 해보기도 한다. 왜 미국까지 와서 날 이렇게 힘들게 했느냐고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본다.
엉뚱한 불똥을 맞은 탓일까 아니면 내 증상이 심각하다고 염려가 되었을까 퇴근 후 남편의 손에는 커다란 약 봉투가 들려있다. 미네랄이 포함된 종합 비타민, 은행 축출 물로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는 생약, 토코페롤 등등.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군. 생전 아스피린 한 알 먹기도 싫어하는 사람이 댓 가지를 한꺼번에 사오다니. 그것도 제일 큰 용량으로만 골라 사 왔다나. 후후 웃음이 나왔다.
'그러지 말고 고스톱이나 한판 칩시다. 할머니처럼 기억력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 아무리 찾아 봐도 아시아나 항공에서 선물로 준 뒷장이 하얗고 모양도 색도 달랐던 화투가 간 곳이 없다. 지난겨울 이웃들과 스키를 타러 갔을 때에 분명 가져갔었는데. 방마다 서랍을 열어 보고 여행 가방마다 뒤집어보다 지쳤다. '당신 약 먹었어?' 그랬던가 아닌가. 다 쏟아 세어 볼 수도 없고, 먹었다고 둘러댄다.
모든 일상사를 메모하고, 표시하고, 확인하며 사는 방법밖엔 더 이상 내 기억력을 믿을 수가 없다. 더욱 힘들어질 건망증은 세월의 전방에서 손을 내민다. 거를 수 없는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 또 그렇게 가보는 수밖에.

(한국일보 목요 칼럼,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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