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의 출판 기념회

2003.08.07 12:29

전지은 조회 수:488 추천:49

6시간 운전이 지루하지 않았다. 만개한 유도화의 진홍과 순백의 조화를 즐기면서, 세상의 바람을 온몸으로 껴안고 흔들리는 가로수들의 한판 춤사위들을 연이어 만나면서 그의 잔치를 함께 기뻐하려 떠난 길이었다.
그의 이민 문학 10년. 그 이전의 그를 난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6,7년 나 스스로 문학수업을 다시 시작하며 그의 이야기들은 내 주위를 늘 맴돌았다. 어느 땐 그의 독자로, 가끔은 문우로, 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갑네기의 중년의 여자로.
샹들리에 흔들리고 테이블마다 꽃 장식이 향기를 내며 우아한 음악까지 흘러 분위기가 한몫 하는 그런 출판기념회는 아니었다. 조금은 형식을 배제한 그와 어울리는 어느 신문사 강당이었다. '주기도문'으로 시작된 문학과 문학인이 만나는 시간쯤이라고 해야 할까.
누구의 글쓰기도 그러하겠지만 그의 풀어내는 작업도 술술 실타래가 풀려 가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 견주어 볼 때 하나의 소설, 특히 장편인 경우엔, 을 만든다는 것은 밤새 뒤척이며 악몽을 꾸고 신열이 오른 뒤엔 헛소리까지 동반하는 고통일 수도 있다. 가슴의 밑바닥에 쌓아 두었던 침잠의 찌꺼기들을 건져 올리며 뿌옇게 변해 가는 생각 속에서 장편 소설의 이야기들을 끌어가기 위한 단막의 연결 부분들. 어둠 속에 빛을 발하는 야광 손잡이였을까 아니면 아직 어둠에 익숙지 못한 명암과 영상을 조절하기에 애써야 했을 눈의 홍채였을까.
어떤 경우가 되었든 자신과의 싸움은 오랜 시간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의 긴 작업에 그리고 그 동안 재치 있는 언어로 표현된 단편들을 모아 낸 또 하나의 작품집에 커다란 박수를 보냈다. 두 권의 책을 동시에 내며 간간이 시도 쓰며, 신문에 칼럼도 맡고 있는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작은 체구의 어디에서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것인지.
그의 끝말은 그랬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독백이었거나 자신을 쳐다 봐 달라는 칭얼거림에 지나지 않았노라고. 앞으로는 좀더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글을 쓸것이며 좋은 글을 쓰는 이전에 좀더 낳은 사람이 되는 일을 해 보겠다고. 문학의 길이란 홀로 가는 길이 아니며 누군가와 함께 가는 길이더라고.
동감한다. 문학도 사람이 살고자 존재하는 일이고, 일상 중의 고통을 향기롭게 승화시켜 표현하는 작업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물론 이 작업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며 계속하는 사람들은 특정소수 일 수 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인 이라도 다를 것은 없다. 특히 이민자인 경우 새로운 환경, 척박한 사회 속에서 좀더 색다른 경험들을 하게된다. 우리가 겪는 경험들은 좋은 소재로 바뀔 것이고 그것들을 풀어가며 엮어 가는 그의 길에 나도 동행한다. 두고 온 땅과 그리움이 가득한 고향의 옛이야기는 이제 그만 접어두고 좀더 넓은 시선을 열고 세계화를 향해 가는 문학의 자리에서 손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맞추어 간다면 어떨까.
나의 역량이 그만큼 되어 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작업에서 증명되었듯 쓰고 또 쓰는, 퍼내고 또 퍼내며, 거르고 또 거르는 작업 속에서 작가도 몰랐고 독자도 감지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은 그의 곁에서 함께 듣고 써 나가는 작업을 오늘 도 계속한다. 그의 잔치에서 손바닥이 벌겋게 덧나도록 기립 박수를 치며. 가슴으로 뜨겁게 오래 오래 껴안으며.

(한국일보 8월 7일, 목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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