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oem

2002.12.12 09:10

박경숙 조회 수:123 추천:4

1991년 9월의 명동


비개인 오후,
젖은 성당 돌벽너머에
젊은이 하나 누워 있다.
하얀 제의 펼쳐입고 모아진 두 손의 로사리오.

당신은 왜 사제가 되었소?
그는 9월에 누워 말이 없다.

당신은 왜 사제로 죽었소?
말없는 홍안이 아름답다.

젖은 눈을 씻으며 고개를 드니
성당뜰에 쏟아진 화사한 한 무리.
혼인 미사를 마친 곱디 고운 신랑 신부,
꽃빛 치마폭 하객들에 싸여
카메라 앞에 선다.

오! 아름다운 젊음.
그러나
더욱 아름다운 멈춰진 젊음이여!
다 같은 젊음인데
시작되고, 정지되는
삶과 죽음의 아리러니가
비개인 9월의 하늘로 푸르게 상승한다.

물기 밀리는 가슴이 되어 골목을 돌아서니
모퉁이 신발 가게의 현란한 색채......
여섯 살에도 한 살 같은 딸 아이의
뒤뚱거리는 걸음마를 생각하며
색동무늬 운동화를 사든다.

아! 다만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
제의를 입고 누운
젊은 사제의 순교 속에 가을이 열리고,
장애아의 어머니가
육천 원 주고 산 아이의 신발을 안고
우주를 품는다.

길너머, 젖은 성당 돌벽너머
말없이 누운 젊은 이가 아름답다.
그 하얀 제의의 눈부심으로
그는
다른 이의 생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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