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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만남, 그 쓸쓸한 느낌

2004.04.30 16:10

박정순 조회 수:692 추천:55

여지껏 살아오면서 내게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인연이라고 믿었다. 폭 넓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편이기는 해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친구들로 인해 유년의 기억에서 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늘 그 추억 하나만으로도 나는 분명 부자라고 생각했다.

우정과 사랑의 차이…. 특히나 여자들의 우정이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같은 것으로 말하는 이들에게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데… 언젠가 부터 내 우정도 다만 나홀로 사랑이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아니 이것은 내 순간의 감정적 판단일지도 모른다. 살아온 세월의 간격은 작은 행동 하나로도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다. 이러한 틈새 생각의 차이는 각기 다른 반응으로 나타난다. 한이불 밑에서 자는 부부도 토닥거리며 싸우는데 하물며 친구 사이라고 그런일이 없을리 없을터.

지난 여름 중학교 단짝 친구를 만났다. 인터넷으로 찾은 그녀의 모습은 많이 세련되어 지고 세월을 거꾸로 가는 듯한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 놓아 그 반가움이 더했다. 자기를 가꿀 줄 아는 모습과 혼자서 잘 살고 있다는 그 말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과 싸우기 위해 때로는 거칠은 행동과 말투가 동반되더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에게 행여라도 주위에 좋은,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반려자를 만나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답답한 내 보수적인 사고의 눈높이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도덕의 잣대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부진 결심의 편지를 읽을 때 그 벽을 어떻게 뛰어 넘어야 할지 한편으론 두려워졌다. 가슴에 칼날에 베이는듯한 아픔, 옛날의 밝고 맑은 모습 그대로 묻어나기를 바라는 생각을 헝클어 보기로 말이다. 힘든 세상살이라고 해도 거칠게 세파를 헤집고 간다고 해도 정도를 걷는 친구였기를 바랬던 내 욕심, 힘이 되어 주지도 않으면서 시어머니 같은 잔소리를 했던 것도 바닥에 깔린 깊은 우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재회란 늘 신선한 충격을 받아들여야 하는 긴장감을 갖고 있는 것. 그녀에게 나만이 유일한 친구라고 내가 아니면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을 버리기로 다짐을 했다. 변한것은 세월이었고 그 세월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은 그렇구나! 중연이라는, 아직도 내 마음은 철들지 않은 소녀 같은데 말이다. 그녀의 눈에 비쳐진 나는 위선의 가면을 쓰고 우아하게 꾸미기 위한 억지 행동을 보고 너무나 실망하고 고까웠다는 글을 읽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흑백사진의 내 모습은 가난을 가득 묻힌 우울한 얼굴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그때 그 시절이 아름답기 보다는 너무나 힘들고 지쳤기 때문에 다시 바늘을 돌린다고 해도 나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쩌면 한낱 시골뜨기였는데… 그래서 비교의 우위를 지금도 확인하고 싶었던 그녀의 글이 나를 한없이 슬프게 했다.

그시절 미래에 대한 무지개빛 꿈을 찾는 봄처럼 파릇파릇 새싹이 힘있게 돋아 났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가난한 부모로부터 받은 십자가를 지고서 열심히 살아왔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 흔한 젊음을 향유하지도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늦은 밤에 라디오 채널에 귀를 기울이다 앉은뱅이 책상위에 엎드려 잠들기 일수였던 주경야독의 어려움에 빠져 있었던 것을.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고 포기하다시피 한 학업은 지금에서야 차라리 욕심을 내서 학업에 전진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구제할 수 없는 어머니의 가난은 우리가 풀수 없는 어떤 거대한 업보 같은 것이었다.

결혼과 더불어 내가 하고 싶었던 일과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을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인내 부족을 그저 결혼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도 아직도 무엇인가 하고 싶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을, 어쨌거나 하고 있다. 그것은 내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혼자서 넋두리를 늘어 놓아도 좋은 내 안의 나를 확인하는 길이며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표지판으로 서 있는 문학일지도 모른다.

만남, 그 쓸쓸한 느낌은 그 친구의 고까움을 뱉은 글이 내게 슬픔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이다. 그것은 초봄, 비내리는 밤처럼 비릿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차량 차량 빗소리가 들리는 밤. 나는 그 친구에게, “그건 오해야, 무슨 소리니?” 하고 확인 시켜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저 바라보기로 했다. 약 30년 이상 간직한 내 우정이, 그래도 난 친구 하나만은 잘뒀다는 자위가 봄날의 꿈처럼 이렇게 허망한 것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내가 돋보이게 하기 위함도 아니고, 그녀의 발랄한 의상도 아닌, 그녀의 파격적인 언어로 인해 붉은 신호등을 본 것처럼 내 마음을 정지 시켰을지도 모른다. 외로울 때 손잡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던 내욕심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것이다.

그녀가 밤차를 타고 나를 만나고 난 오후에는 또 다른 모임이 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그녀가 가야 하는곳은 극과 극의 거리이기 때문에 밤차를 타고 온 그녀에게 편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 친구(?)를 불렀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와 내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가 느낀 소외감을 난 깨닫지 못했던 것을….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들의 내면에서 풍겨나는, 힘이 들어도 올바른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그런 삶의 모습에서 숙연해지고 향기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 내가 가는 길을 걸어 간다고 해도 만남, 그 쓸쓸함의 아픔이 오래도록 묻어날 것 같은 봄날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릴 들으며 나를 되돌아 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