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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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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석굴암

2006.12.29 01:28

박정순 조회 수:823 추천:50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시간이 참으로 덧없이 스쳐 지나간다. 차가운 비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길바닥에 나뒹굴며 사람들 발길에 짓밟히는 그 소멸의 모습이 애처롭다. 무엇인가의 끝을 직면한다는 것은 스산하고 쓸쓸하다. 하지만 한 해는 다시 시작되고, 봄이 되면 나무는 파릇한 싹을 틔우지 않겠는가.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새롭게 살아나는 것들로 인해 다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소멸이 없으면 재생도 없고, 절망을 모르면 희망도 낯설고, 슬픔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지 않으면 기쁨의 빛을 맞을 수 없다는 삶의 이치가 되새겨지는 때가 바로 늦 가을의 아름다움인것 같다. 초라한 우리들 생에 대한 느낌표 하나를 더하기 위해 느린 걸음으로 찾아 간 곳, 천년 고도의 신라인들의 정수를 마주하기 위해 석굴암부터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로 이끌며 흐르는 물에 씻고 마주 바라 볼 수 있음은 행복이다. 간간히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자국이 자박 자박 깊은 산속을 깨우고 있었다. 마음에 도를 닦으며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석가 여래 불상을 보는 순간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은 좌우가 철저한 대칭을 이루도록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대 조형미술의 기본원칙이기도 하지만 석굴의 시지각적 안정감에 기여하고 있다. 석굴암에는 정사각형과 그 대각선의 사용, 정삼각형과 수선(垂線)의 사용, 정확한 원의 작도, 정확한 곡률의 구면 사용, 원에 내접하는 정육각형 사용, 등할(等割)의 사용 등이 엿보인다. 이는 모두 건축학적으로 시지각적인 안정감을 주는 비례구도로서, 궁극적으로 석굴암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다. 천개석의 위치나 본존 뒤 광배(光背)의 위치, 채광에 이르기까지 수학적인 비례에 근거하여 참배자를 배려한 석굴암 조형에는 놀라운 수리과학이 적용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불가사의로 기록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보존불의 이마에 있는 다이야몬드는 동해의 일출을 받아 그 빛이 다른 각도로 역반사되어 또 다른 보존불의 미를 볼 수 있는 것을 일본의 침탈 행위로 그 일부를 복원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들의 사랑도 삶을 따뜻하게 채워가고 의미있게 변화시키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처럼 아름다운 흔적이 남을 수 있을지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조용한 산사의 길을 걸으며 뭔지 부쩍 자란 듯한, 그래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온 듯한, 동해 바다의 넓고 깊은 기운을 모두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국사를 보러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