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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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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는 영도교라는 다리가 있다. 조선 6대 임금인 16세 어린 단종과 정순왕후가 이별한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너서 정순왕후 송씨와 단종은 두번다시 만나지 못한, 영원히 이별하였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다리를 영도교라고 한다. 세조에 의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간 단종의 유배지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용포다. 푸른 물길이 에두워 싸여졌다고 하여 청령포라고 한 이곳은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청용포를 건너와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청용포에 있는 소나무들은 한결같이 단종이 있었던 어가를 향해 드리워져 있다. 마치 신하가 임금을 향해 절을 하는 것 같아 그를 따르던 충신들이 죽어 소나무로 변하였다고 하니...조선의 역대 임금중에서 단종만큼 충신이 가장 돋보였던 왕도 없었을 것 같다.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소나무를 의인화하여 드러낸 것 같은 전설도 가슴이 애잔하였다.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관음송이라는 소나무는 유일하게 단종과 함께한 증인의 나무라고 한다.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소나무는 단종의 오열하는 소리와 모습을 보았다고 하여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그것을 증명하듯 소나무는 두갈래로 나뉘어져 있고 윗쪽은 심하게 뒤틀려있다. 나무도 단종의 슬픔을 함께 가슴아파하여 생긴 흔적이라고 한다.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 송씨가 그리워서 밤마다 울었다고 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나무의 수령은 단종 유배시에 80년으로 기준하여 수령은 600년정도 된다고 한다. 청령포 뒷산 층암절벽 위에 있는 망향탑은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그 돌을 쌓으며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부디 오랫동안 살아 남아라고 기원을 하였던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 어느 왕비보다 오래 살아 살아 3대의 왕을 거쳤던 정순 왕후의 일대기, 영 이별, 영영 이별.... 윤덕화의 일인 공연을 봤던 것이 생각났다. 살아 있음이 기다리며 그리워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동강의 푸르고 맑은 물길은 예나 지금이나 흘러가듯이 저 강물에 띄울 수 있는 내 그리움들은 어떻게 읽혀지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