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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온타리오 호숫가에서

2008.05.31 21:41

박정순 조회 수:377 추천:41

아침은 살아있음의 환희, 다시 신발끈을 캐나다의 새벽 온타리오 호숫가에서 잠은 오지 않고 글을 쓰자니 집중이 되지 않아 새벽 호숫가에 가기로 했다. 새벽 바다 대신 호수라도 보면 가슴의 응어리가 풀릴 것 같은 생각에서다. 동해 바다 일출의 장엄한 모습이 그리울 때 나는 이곳 온타리오 호숫가를 찾아보곤 한다. 텅 빈 고속도로에는 드물게 질주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느린 걸음으로 운전하는 나를 탓하는 듯 씽씽 달려간다. 공원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인적이 끊어진 외딴 길 위로 어둠에 쌓여 두려움을 느꼈다. 두려움으로 이성을 잃게 될지도 모를 일. 만약을 대비하여 휴대폰을 옆에 두고 구급 번호를 입력했다. 한편으론 ‘이 새벽에 무슨 일이 있으랴’ 하며 부드러운 음악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였다. 만약 어떤 일이 일어나면 침착하게 그리고 천천히, 조용히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며 조심스럽게 핸들을 움직였다. 신새벽, 서울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로등 불빛이 훤히 비추는 곳, 넓은 호수가 눈앞에 바로 드러나는 곳에 자동차를 세웠다. 주위는 어둠에 쌓여 도시의 불빛으로 금빛으로 출렁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해뜨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자동차 의자를 뒤로 밀어 놓고 시동을 켠 채로 눈을 감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서울에 있는 언니에게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휴대폰의 진동이 가늘게 이어지고 언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 시간에 웬일?” 하며 먼저 동그란 눈이 되어 시차 확인부터 하였다. 그저 단순한 안부 전화임을 확인한 언니는 투표를 하고 난 뒤의 심정을 풀어 놓았다. “요즘 살기가 힘들어서, 선거 때문에 나라 살림은 뒷전이고 맨 날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 보기 싫어서 무조건 ○○○당 찍으라고 애들에게 말하기까지 했다.” 언니의 웃음이 밝게 어둠을 흔들면서 불빛에 빛나는 호숫가로 떨어지는 듯하다. “유권자들이 당만 보고 찍는 건 이곳 캐나다 수준인데…” 나의 말에 언니는 또 한번 웃었다. “대통령이 말실수는 있었지만 탄핵 받을 만큼의 잘못은 안했지?” 보통 사람들인 우리들이 위정자들의 정쟁 싸움에 치를 떨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읽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질은 위신을 위한 싸움이라고 이 욕망의 주인, 노예 변증법의 핵, 그것이 역사 전개의 힘의 원천을 이루는 것이라고 헤겔은 말했다. 그 힘겨루기에 지불해야 하는 바닥 경기를 체감하는 서민의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하는 주부인 언니. 4월 프로젝트에 희망을 걸었던 캐나다 문화부의 그랜트 또한 낙방이 되어 온몸에 피돌기가 마치 멈춘 듯한 허망함에 빠져있던 나는 언니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든다. 목표와 계획을 세운 이후의 파급 효과를 계산에 넣어 차선을 세우긴 했지만 내 능력의 한계임이 드러나는 회의감은 나를 더 우울하게 한다. 몇 년에 한번 개최되는 회의에 목표를 맞춘 것이었는데…. 행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각 회원국으로 편지와 시와 산문집만 우송하기로 했다. 우리들이 쓴 그런 작은 자료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로 인한 명분 하나에 온 힘을 모아 시간을 투자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루지 못한 것에 절망하지 말자 창작의 실타래를 푸는 길을 찾는 현실의 안주, 범상을 뛰어 넘지 못하는 방향 설정은 부딪히거나 넘어지기 쉬운 것이다. 하늘의 별을 보고 꿈을 심었던 것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을 지도로 안내하는 것 또한 내게 있어 문학이라고,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무능이기도 하고 쓸 때 없는 자존심 탓이기도 하다고 생각해보지만, 이도 저도 모두 버리고 돌아 서는 길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아직도 마음 다스리기가 끝나지 않은 까닭일 터이다. 호수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방파제 주변의 바위들과 벤치의 모습이 여명 속에서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수평선 위 붉은 빛을 토하는 동녘 하늘이 새악시의 뺨처럼 불그스레해지기 시작했다. 희망을 보고 싶은 건 바로 이런 생동적인 힘 같은 것을 내 안에 담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분노와 회의감의 구속에서 탈출하고 싶은 도피 의식이거나 방관자의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래서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묻고 있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밝아오는 여명처럼 그렇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 바로 일출을 바라보며 건질 수 있는 힘 같은 것.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돌아보는 나의 발자국 같은 것이리라. 아이들의 등교준비를 위해 돌아오는 고속도로에는 출근하는 자동차들로 붐비고 있다. 아침은 이렇게 생동감을 느끼게 해 주는 살아 있음의 환희 같은 것이다. 이루지 못한 것에 절망하기 보다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신발끈을 묶으며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이만큼까지 온 진도에 자위하자고 말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일이다. 캐나다 토론토=국정 넷포터 박정순 nansulhyun@hanmail.net http://www.muvibee.com/watch/?v=7s2wCVcmYOU/emb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