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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한편의 영화에 평생의 설교를 담았다

2008.05.31 21:49

박정순 조회 수:389 추천:37

"한편의 영화에 평생의 설교 담았다" <예수의 수난>을 보고 <예수의 수난>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 시간을 상세하게 관찰하여 묘사한 영화다. 이 영화를 제작한 멜 깁슨은 유태인들의 입김이 센 대형 영화 제작사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사재 3천만 달러를 털어 영화를 만들었다. 멜 깁슨은 ‘성경 그대로’를 재현하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영화 속 배우들은 유대인들이 쓰던 아람어와 로마인들이 쓰는 라틴어로 연기하며, 드문 드문 영어 자막을 통해서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 [% 1, original, right %] 기원후 30년경 로마령 팔레스타인에 나사렛의 예수라고 불리는 미천한 목수가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가르치고 전파하기 시작했다. 수세기 동안 유대사람들은 모든 악과 절망으로부터 신성한 조국을 해방시킬 메시아의 출현을 기대했었다. 마침내 추종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칭송했지만 목수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은 유대인 성직자와 바르새 사람들로 구성된 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한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해산달이 가까운 아내의 간청과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 그를 죽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를 죽이지 않으면 유대인들의 폭동 가능성에 직면하게 되자 예수를 도시 밖으로 끌어내어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명한다. 그리고 죄없는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앞에서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예수의 죽음과는 관계 없음을 표현했다. 유태인 단체들은 ‘히틀러 이후 유태인을 가장 모독한 영화’라며 영화 상영 중지를 촉구했다. 타임이나 뉴스위크 등 유태계의 입김이 큰 북미 언론 매체들도 영화 비난에 나서고 있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유태인들은 이 영화가 안티 유태인을 표출한 것이라며 성토하는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멜 깁슨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희생의 잔혹성과 함께 그 위대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동시에 진정한 서정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믿음, 희망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잔혹한 희생을 인간의 육체로 겪으면서,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왕국의 왕으로서 죽어갔던 예수를 그리는 것이 멜 깁슨은의 신앙고백을 하고 싶었던 유일한 목표였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영화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사순절에 기독교인들이 재현해야 할 그의 죽음과 부활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고통을 통한 희망을 증명하기에는 좋은 영화라고 말이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단 한 편의 영화에 평생의 설교를 담았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예수에게 내려지는 채찍질과 십자가에 몫 박히는 잔악한 장면으로 인해 캔자스 주 위치타에서는 기독교 신도인 50대 여성이 관람 도중 심장 발작을 일으켜 사망한 사건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예수가 받는 종류가 다른 채찍질에 살이 터져 나가고 피가 흥건하게 고이는 그 참혹함을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숨죽여 오열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니 영화가 끝날때까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앞에서 당하는 그의 고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 아픔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죽고자 하면 살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것처럼 그는 그렇게 죽음으로서 영원히 우리들에게 살아 난 것이리라. 원수까지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며 십자가에 못 박혀 로마 병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가 그래서 더 위대해 보였다. 그를 외면했던 12제자들은 “이것은 내 피와 살이니 너희는 이 예식을 행하라” 하는 그와 나눈 마지막 제례의식을 전례하기 위해 십자가 죽음을 자청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죽었던 예수의 죽음 이후 300년 동안 박해를 받다가 서기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된다. 그리고 325년 니카이아 종교회의에서 "만인이 믿을 공평한 종교"로 선포되고, 380년부터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승인받았던 것이다.

 

국정네포넷 박정순 nansulhyun@hanmail.net 박정순 (nansulhyun@hanmail.net) | 등록일 : 2004.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