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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가난과 데모…어정쩡한 시대의 ‘허리’

2004.04.16 04:39

박정순 조회 수:649 추천:25

가난과 데모…어정쩡한 시대의 ‘허리’

오늘날의 40대들은 정체성이 모호한 세대다. 앞세대에 비해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회를 경험했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온 다음 세대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아날로그 세대일 뿐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40대들에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뽑는 설문을 진행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가난’과 ‘데모’를 이야기했다. 또 자신(40대)은 사회핵심 세력으로는 아직 미숙하며, 50~60대가 사회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40대의 키워드를 통해 그들의 세계를 엿봤다.

#어린시절

▲월사금:내가 다녔던 무학초등학교는 월사금이 집 형편에 따라 300~600원이었다. 아침에 담임선생님이 교장선생님한테 월사금 실적으로 혼난 날에는 아이들을 수업 전에 돌려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를 엄마들은 괜히 때리다 결국 서로 껴안고 울곤했다. 난 그때부터 우린 너나할 것 없이 왜 이렇게 다 못사는가, 그게 항상 궁금했다.(김형곤)

▲공중화장실:어린 시절 대부분을 서울 수색 산동네에서 살았다. 허름한 무허가 흑벽돌집이 촘촘히 이어진 산동네는 아침이면 공중화장실 이용하는 사람, 우물가에서 물긷는 사람으로 북적댔다. 그땐 싸움도 많고 어렵게들 살지만 무언가 따뜻함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사람답게 산다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던 한 배경이지 않을까.(하승창)

▲옥수수빵:초등학교 때는 한 학급당 90명에 이르렀고 2부제 수업을 했다. 학교에서는 미국에서 직수입한 옥수수 가루에 버터로 만든 옥수수빵을 배급해 주었다.(함인희)

▲복장검사:월요일 아침이면 교문에서 복장검사를 했다. 칼라에 풀을 먹였는지, 단발머리는 귀밑 2㎝인지, 심지어 속옷을 제대로 챙겨입었는지도. 일사불란함, 획일성이 이때부터 체화된 것은 아닌지.(함인희)

▲5원짜리 라면: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1원짜리 호떡을 사먹었다. 하나 사면 20명은 달라붙어 검지 손가락 한마디만큼 달라고 손을 내밀곤 했다. 라면이란 게 처음 나왔을 때 딱 한 젓가락을 허락받아 먹었는데 그때의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나승집)

▲빨갱이:고무줄 놀이 할 때 ‘이 강산 침노하는 적의 무리들…’ 하는 노래를 불렀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빨갱이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게 하는 반공교육이었다.(김형경)

▲박정희 대통령:서울 성남고를 다녔는데 여의도에서 가까워서 박정희 대통령 행사에 자주 동원됐다. 태극기 흔들고 ‘대통령 찬가’를 불렀다.(김왕배)

▲잘 살아보세: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때까지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하는 노래를 듣고 불렀다. 온나라가 오직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만을 지고의 선으로 여기는 듯한 분위기에서 그 시절을 보냈다. 이 때문에 우리 세대에는 무의식 속에 집단적인 물질 결핍감 같은 게 형성되지 않았을까 의심하게 된다.(김형경)

▲남진 vs 나훈아:중학교 때 남진과 나훈아 팬으로 나뉘어 ‘님과 함께’나 ‘두고온 고향’을 불렀다. 송창식·윤형주·김세환·양희은 등 당시 대중 스타들은 이미지보다 타고난 실력으로 수명이 결정됐다.(함인희)

#대학시절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후, 학생 자치조직인 학원민주화추진위를 구성했다. 학생회를 만들자는 첫 움직임이었다. 그때 문과대 대표활동을 했다. 한때 요주의 인물로 찍혀 전두환 정권 시절 2~3개월 도망다닌 적 있다.(김왕배)

▲낭만적 데모:같은 40대라도 386세대 출신인 40대와 내 또래는 다르다. 386 이전 세대인 우리는 민주화, 자유화를 요구하는 낭만적 데모를 했다. 반면 386세대는 체제문제나 조직화된 노동문제를 다룬 이념적 데모를 했다.(김왕배)

▲희귀한 여대생:70년대말만 해도 대학생이 특권층이었기에 여대생은 더욱 그랬다. 교회 동아리에서 만났던 서울대생의 여동생은 오빠를 위해 공장에 다닌다고 했다. 대학시절 서구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아 의식화되었는데 사회는 고학력 여성전문 인력에 대해 무지했다. 졸업하면서 유학생과 결혼해 미국으로 가거나 각종 고시에 합격해서 장래가 촉망되는 남편감과 결혼하는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함인희)

▲10·26과 5·18:77학번은 대학 3학년에 10·26, 4학년때 5·18을 겪었고 휴교령으로 대학 주요시절을 허송세월했다. 그때 도서관파를 경멸했는데 이들 다수가 나중에 대학 강단에 서게 되면서 ‘강단 주류학자 vs 재야 비주류 혹은 비판학자’들 간의 전선이 형성됐다. 학자는 급진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도 했다.(함인희)

▲전환시대의 논리:대학 1학년때 리영희 선생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조건반사의 토끼’라는 글을 우연히 읽었다. 바로 내 모습이었다. 그때까지 난 운동권을 빨갱이라고 생각했으나, 나 자신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선배들과 싸워가며 소위 노는 서클을 운동권 서클로 만들었다. 결국 나는 대학 3학년 1학기때 징역에 가야 했다.(하승창)

▲죄책감:숱한 친구들이 데모하다 군대가거나 교도소로 갔다. 친한 친구는 공장에 위장취업하기도 했는데 온 몸으로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던 그들에게 빚졌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황지미)

#사회생활

▲구조조정:외환위기때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들어왔다. 한국 오니 잘나가던 친구들이 많이 정리해고됐다. 그러자 이혼하고 가정이 깨지더라. 그런 친구들 보며 기업 구조조정의 사회심리적 충격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정리해고에 대해 연구중이다. 불안하게 회사생활하는 친구들이 아직도 많다.(김왕배)

▲빚더미:직업과 관련해서는 초기에 큰 꿈을 가졌었다. 노력해도 안된다는 사람이 있으면 가까이 가기 싫을 정도였다. 사업을 확장하고(지나서 보니 무리였지만) 꿈에 부풀어 있던 중 외환위기를 맞았고 빚더미에 올랐다. 죽고 싶도록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인생의 가치관을 자꾸 돈과 연관지어가는 내 자신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진다.(나승집)

▲목동 27평 아파트:시간강사 생활을 오래해 모은 돈이 별로 없다. 은행빚 5천만원이 남은 목동 27평형 아파트가 재산이다. 돈은 많이 벌고 싶다. 로또도 해봤는데 잘 안되더라.(김왕배)

▲돈:한국에 살면 학벌, 인맥을 무시할 수 없고 물가는 자꾸 오르는데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뭘 남겨줄 수 있을지 고민이다. 돈이 부모의 능력인 것 같아 씁쓸하다.(황지미)

▲어정쩡한 세대:부모, 스승을 존경하고 모시나 자신은 자식에게 모심을 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 30대에게 차이고 50대에게 눌리는 세대.(김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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