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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두여인의 눈물

2004.02.14 11:06

박정순 조회 수:300 추천:3

두 여인의 눈에 눈물이 괴었다. 역사의 뒤안에 서 흘러나오는 통한의 아픔으로 비친다.

인기탤런트 이승연(36)씨. 그는 '종군 위안부' 소재의 영상ㆍ화보집을 촬영하는 동안 "내내 눈물이 났다"고 12일 기자회견에서 털어놨다. 자신이 비록 애국자는 아 니지만 종군 위안부들이 겪었던 역사의 현장에서 만드는 작품이라서 더욱 가슴아팠 다는 것이다.

위안부 출신의 황금주(76) 할머니. 그는 13일 이씨의 영상과 사진 제공을 금지 하는 가처분신청서를 법원에 냈다. 아픈 역사를 몰상식하게 이용하는 행위로 당장 사과하고 제작도 중단하라는 것이다. 회견 도중 할머니는 주름깊은 얼굴에서 연방 눈물을 훔쳐냈다.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고 있지만 두 사람의 인식은 그들이 걸어오고 몸담고 있는 현실 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같은 무색의 액체가 눈에서 떨어지고 있으나 그것을 바 라보는 시각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른 셈이다. 단순히 세대와 어법의 차이 때문일 까.

이승연은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정상급 연예인의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도중에 불미스런 사건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역사성과 무관한 개인사다. 유명제품의 광고모 델과 방송 프로그램 출연이 말해주듯이 그는 절정의 인기가도를 밟고 있다.

할머니는 종군 위안부라는 멍에를 걸머진 채 꽃다운 청춘을 흘러보낸 시대의 희 생자다. 뒤늦게 여성단체 등과 함께 역사적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팔순이 눈앞인 황혼기를 살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질곡의 가시밭이었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여인이 '역사적 아픔'을 가운데 놓고 극히 대조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누드냐, 예술이냐거나 상업주의냐, 애국심이냐 또는 명예훼손 이냐 창작의 자유냐는 보기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치더라도 당사 자의 양해나 동의없이 제작에 착수하고 이를 발표한 것은 아무래도 이씨 측의 잘못 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씨와 영상ㆍ화보 제작회사는 위안부 역사의 당사자가 아니다.

한국인으로서 아픔을 공유하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려 했다고 주장하나 그것 이 희생자의 응어리진 내면 상처를 다시한번 헤집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사전에 주의 깊게 살펴야 했다. 당사자가 가처분신청을 내고 명예훼손도 검토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하다고 하겠다. 소재 선택과 방법에서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양측은 현재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할머니와 여성단체 등은 16일까지 사과와 제작중단에 대한 답변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이씨와 제작사 측은 후속촬영 일정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네티즌들은 이씨의 연 예계 퇴출까지 주장하고 있고,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40살이라는 나이의 간극에서 빚어진 현상일까. 아니면 두 사람의 눈물이 함유하 고 있는 성분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씨와 할머니의 눈물은 서로 엇갈리게 흐르며 그 거리가 무척 멀게만 느껴진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안에 대해 지레 흥분부터 하고 보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언론과 여성단체 등이 일제히 이씨와 제작회사를 비판 하고 있는 가운데 옳든 그르든 이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난타부터 하기보다 좀더 냉정하게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 본다.

jungwoo@yn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