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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부부이야기]아직도 아내 이메일 훔쳐보세요?

2004.02.26 10:15

박정순 조회 수:267 추천:4

여러분은 아내 혹은 남편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묵인 혹은 보장하거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참 어렵고도 복잡한 문제다. 결혼한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대개 비슷한 상황,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통적으로 겪는 상황 가운데 하나가 부부간 사생활 보장에 대한 것이었다. 과연 어디까지가 존중되어야 할 사생활인지, 아니면 부부간에는 사생활이라는 거 자체가 무의미한지 쉽게 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분명 부부가 한번은 꼭 풀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2030 부부 중에서 상당수가 결혼 전에는 서로 사생활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쿨한 관계를 한번쯤 상상한다. 그러다가 정작 결혼하고 나면 부부간의 사생활 보장이라는 것이 아주 어렵고도 복잡한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계약결혼을 행동에 옮겼던 당대 최고의 지성인 커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서로의 성적 자유와 사생활을 존중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가 죽을 때까지 그의 애정행각 때문에 속을 썩였다고 한다. 당대의 지성인도 서로의 사생활을 완전하게 보장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러니 범부인 우리야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간혹 2030 부부 중에선 네 것과 내 것을 철저히 구분하고 사생활도 보장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번 돈은 자기가 관리하며 자기 일은 각자 알아서 하고, 사적인 인간관계나 부모에 대해서도 각자가 책임을 지고 관리(?)한다는 식이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것 같지만, 이는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리 효과적인 방법이 되지 못한다. 부부는 그리 단순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간에 무슨 비밀이나 사생활이 존재하냐고? 물론 존재한다. 단 그 비밀이나 사생활이 서로의 신뢰를 상하게 하거나 결혼생활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그리고 배우자에게는 사생활이나 비밀이 절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은 내가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것을 부부가 합의한 것이라면 문제될 리 없겠지만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면 문제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간혹 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그것을 의심하는 건 절대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아니다. 문제는 신뢰를 지키고 있는데도 지레짐작하고 상상하여 상대방을 의심하는 것이다. 사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은 치료를 요하는 심각한 문제다. 물론 이전에 신뢰를 깬 적이 있어서 그것이 이유가 되어 상대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라면 신뢰를 깬 사람이 더 노력해야 한다. 신뢰를 깼던 사람이 먼저 자신의 사생활이나 비밀을 모두 공개하여 상대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도록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악순환이 연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보편화를 비롯한 디지털화는 사생활이 쉽게 침해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사생활을 엿보기 쉽다는 것이 부부간 사생활 침해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순 없다. 실제로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의 이메일을 몰래 훔쳐본 것이 정보통신망이용촉진에 관한 법률과 전기통신사업법 등을 위반하여 처벌을 받은 판례가 있다.

사실 이메일이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다보니, 사생활을 엿보는 수단으로 이메일을 훔쳐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이제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상대방 컴퓨터의 로그파일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핸드폰 사용내용도 신청만 하면 온라인에서 조회가 가능하다. 아울러 핸드폰의 GPS 기능을 통해 상대방의 현위치를 추적하는 것도 간단하다.

이제 상대가 컴퓨터에서 어떤 사이트에 들어갔는지, 어떤 키워드를 입력했는지를 볼 수도 있고, 누구와 어떤 이메일 을 주고받았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아울러 상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언제 통화를 했는지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해킹 프로그램의 일종인 스파이웨어를 상대의 사생활 감시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 부부가 서로의 사생활을 엿보려는 유혹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인터넷이 문제라고 하겠는가? 결국 문제는 부부간의 신뢰 아니겠는가?

2030 부부 가운데 이메일 때문에 한두번 싸우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요즘 네티즌이 아닌 2030은 없다고 할 정도니 상대의 이메일을 훔쳐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상대방의 이메일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아이디, 또는 패스워드를 궁금해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의 보편화가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할 수 있는 여지를 더 확대시킨 셈이다.

아예 서로에게 공개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최대한 공개하고, 사생활과 비밀을 혼자만의 영역이 아닌 부부 공동의 영역으로 확대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부부간에 사생활과 비밀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패스워드로 숨겨진 것은 가능하면 서로가 공유하도록 한다. 신뢰가 바탕이 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리고 패스워드를 알려준다고 해서 매번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숨기면 자꾸 캐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부부간에는 서로가 넘나들 여지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부부가 되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간섭 아닌 간섭을 하고, 신경을 쓰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등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면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부부간에 적당한 간섭과 도를 넘지 않는 사생활 침해(?)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부가 보장해야 할 사생활의 범위는 상호합의해서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이 문제를 진지하게 얘기할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겠다. 부부가 사생활 보장 수위에 대한 문제로 대화하는 시기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그것이 대화가 되었건 건전한 부부싸움이 되었건 말이다. 이를 통해 부부들은 각자의 견해 차이와 서로에 대한 불만 등을 얘기할 수 있으니 언제 터질지 모를 일을 계속 품고 사는 것보다야 빨리 터트려서 서로가 현명하게 해결할 여지를 가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김용섭-전은경[부부칼럼니스트] www.webmedia.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