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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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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Re..additonal

2004.03.25 05:17

박정순 조회 수:169 추천:7

사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있으면, 굳이 ‘종교영화’에서 이런 잔인한 장면이 필요할까란, 의문이 든다. 하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일반적인 영화의 평가기준이나 취향이 통용될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재현에의 열망이고, 그 열망의 근원에는 절대적인 신앙이 있다. 멜 깁슨은 12년 전 신앙의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며 고통과 용서, 죄를 사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구하던 멜 깁슨은 예수의 수난을 둘러싼 성서와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희생의 잔혹성과 함께 그 위대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동시에 진정한 서정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믿음, 희망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잔혹한 희생을 인간의 육체로 겪으면서,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왕국의 왕으로서 죽어갔던 예수를 그리는 것이 멜 깁슨의 유일한 목표였다. 잔혹함은, 결코 멜 깁슨이 피해갈 수 없는, 아니 정면으로 응시해야만 하는 주제였다.



멜 깁슨은 모든 것을 철저한 재현으로 일관한다. 모든 인물과 사건은 ‘극사실주의’로 묘사된다. 보통의 영화라면, 외국이라도 영어를 쓰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하여 모두 당대에 쓰였던 언어로 대화한다.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유대인은 아람어로, 로마인들은 ‘거리의 라틴어’를 사용한다. 애초에 멜 깁슨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자막없이, 그대로 상영하려고 계획하기도 했다. 철회하기는 했지만, 멜 깁슨의 의도는 어떤 특정의 대사나 상황을 전달하여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공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국교가 아니라도, 서구인이라면 누구나 기독교적인 바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다. 그들에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고,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다면 이미 상세하게 알고 있다. 멜 깁슨은, 모든 것이 아람어로 진행되어도 관객은 그 상황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안다고 믿었을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성서가 진리라 믿는 멜 깁슨이,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