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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삶의 보따리속의 신비스러웠던 기억

2004.01.11 00:02

박정순 조회 수:208 추천:10

가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해 늦은 봄이었던가? 아님 초 여름 이었던가? 아마도 봄이었지만 여름같은 날씨였던날의 신비스러운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녀와는 내 나이 24살,꿈 많았던 시절의 직장동료로서 만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하였고 그리고 결혼 후 아기를 낳고도 계속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공통된 화제는 늘 남편과 아기에 관한 것이었다. 성실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그녀는 탁월한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한 일을 리뷰하여 결재를 올렸기 때문에 윗분들의 사랑과 신임을 듬뿍 받았다.

그녀는 내가 힘들 때마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늘 함께 있어 주었다. 우리 부부가 캐나다로 이민을 온 후에도 그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선물해 주곤 했다.

그 해,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 그녀에게 받기만 했던 빚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사업확장으로 남편이 운영하는 대리점을 맡아서 운영하였다. 그래서 더 바빠진 그녀의 일상으로 백화점 부식코너에서 반찬을 사서 먹는다고 했다. 하여, 시간적 소요가 많이 드는 김치를 담그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어머니의 김치 담그는 솜씨는 수준급이었으므로 특별히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어머니, 난영이네 김치 좀 담아 주고 싶은데요. 늘 신세만 져서.. 마땅히 사 줄것도 없고... 어머니 김치 맛있게 담그시니까 좀 담그 주시겠어요?" 시어머니께서도 워낙 우리들의 밀착된 관계를 아시는지라, 흔쾌히,
"그러려므나" 하고 대답을 하셨다.

그렇게 하여, 총각김치와 포기 김치통을 바리 바리 들고서 시댁에서 전철까지 택시를 탔다. 집 앞에서 택시를 탈때는 어머니께서 들어 주셨기 때문에 무게를 별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택시에서 내려 전철을 타기위해 계단을 오르는 순간, '아니, 이렇게 무거울 수가...' 양 손에 든 무거운 김치통은 예수님이 지고간 십자가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고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김치통을 바닥에 내려 놓아야 했다.

어찌 어찌하여 전철을 타긴 탔지만 전철안에서부터 고민은 시작되었다. 강남역에서 내려 그녀의 집까지 이걸 어떻게 들고 갈 것인가? 택시를 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단거리를 목적으로 택시를 탔다간 운전기사님께 혼날 일이 뻔한 것이고.... 시댁인 등촌동에서 강남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에는먼거리인 관계로 시댁에서 전철역까지만 택시를 탔던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전철을 탄 나로서는 이제 그녀의 집까지 도착하는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누가 이 무거운것을 들어 줄 사람이 없을까? 강남역이 가까워질 수록 팔이 쑤욱 빠져버린 듯한 이 무거운 김치통을 운반하는 일이 걱정이었는데... 나의 고민은 무의식으로 그녀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께 묻고 있었다.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보고 계신다면 난영이 줄려고 갖고 가는 김치 어떻게 해결 해 주세요' 하고 말이다. 헌데 참으로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나타났다.

김치통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나를 본 대학생이 입구까지 들어 주겠다고.... 세상에나, 네상에나... 이렇게 고마울수가 있으랴... 사양도 없이 덥석 그의 손에다 김치통을 맡겼는데 그 대학생, 다시 내게 묻는 것이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역삼초등학교. 00빌라까지요."
"그럼 제가 그곳까지 가니까 제가 들어 드릴께요."
와~ 이렇게 기쁜 소식이 어디 있으랴?

그 대학생땜에 난 편안하게 내 친구네집까지 운반해 놓을 수 있었다. 김치통을 현관 문 앞에 놓고 난 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사전에 이 사실을 알리면 그녀는 한사코 사양을 하거나 아니면 회사 일은 뒤로하고 달려 올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가 폭우로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운전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공항까지 태워 주겠다는 그녀에게 택시를 타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얼굴이라도 보러 오겠다고 했다. 강남에서 등촌동으로 오는 팔팔도로는 침수되어 폐쇄되었고 그녀를 기다리던 나는 체념하고 있었는데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인 영등포로 돌아 돌아 찾아왔던 친구.

파도처럼 밀려드는 기억 저편에서 이민의 삶의 덫이 무거운지 하염없이 시간이 가져다 줄 그녀의 소식을 기다리고만 있는 내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의 별처럼 맑고 밝았던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수선화처럼 아름다운 내친구, 그녀에게 이 세상의 행복과 사랑이 모두 함께 하기를 새일월에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