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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하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2004년02월15일

서울에서 차로 약 1시간. 인천국제공항과 황해 사이에 월미도라는 곳이 있다.
여름에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 인기가 높은 관광 지다.

최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등 차가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 섬을 왕복하는 배가 부두에 정박할 때만 승객들이 드문드문 모여들 정도였다.

100년 전인 1904년 2월 8일 오후, 일본군은 이 월미도에서 러시아 소형 전함을 급습했다.

이날 밤 뤼순(旅順)에서도 러시아 함대를 공격 하면서 '러일전쟁'이 발발했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은 대한제국의 대외중립선언을 무시하고 서울을 침공했다.

한국 측에서 보면 러일전쟁은 피해가 엄청난 전쟁이었다.

러시아와 일본이 자기들 멋대로 조선반도의 권익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여 조선 본토를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조선반도가 일본 식민지로 전 락하는 한국 현대사 비극의 시발점이 됐다.

월미도에서 가까운 공원에서 지난 11일 러시아가 전몰자 추도식을 열었다.

(한국)시민단체는 '침략에 대한 사과가 없다' 며 추도행사에 대 해 항의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러일전쟁 100년' 은 최근 속출하는 정계 스캔들에 묻혀버렸는 지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일부 신문들이 특집기사에서 일본의 유사 관련 법제나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을 우려하는 내용을 게재하는 데 그쳤다.

오는 25일이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된다.

안타깝 게도 최근 한국의 혼란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잇단 부정자금 문제 발각으로 체포된 국회의원은 14명에 달한다.

노 대통령의 친척이 체포되고, 전두환ㆍ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도 표면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인 데도 여야는 새로운 의혹을 폭로하는 데 정신이 없다 . 농촌 출신 의원들이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3번 에 걸쳐 실력 저지했다.

노사대립도, 정부와 신문과의 대립도 개선조짐이 없다.

정부 내부에 서는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외교통상부 장관과 해 당 부처 간부가 경질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 겨우 20~30%로 정권 발족 1년 시점에서 보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점도 그 원인이지만 한국의 혼란 상황을 '대통령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 고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직전 열강의 진출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해야 할 시 기에 대한제국의 지도층은 친러파 친일파 독립파 등으로 나뉘어져 내 부 싸움에만 여념이 없었다.

러ㆍ일 두 나라는 이 같은 대립과 혼란을 틈타 조선반도의 권익을 차 츰차츰 먹어갔다.

조선의 26대왕 고종의 황후였던 민비의 암살도 일 본이 '(한국 내) 친러세력 소탕'이라는 목적을 갖고 벌인 만행이었다 .

"한국에는 국내 투자와 고용확대를 위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남 북통일에 대한 전략을 구축해야 하는 등 중요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금이야말로 일치단결해 글로벌 시대에 준비해야 할 때다. 이럴 때 국내에서는 싸움만 일삼고 있다. 당시(러일전쟁 직전)와 닮았다"고 이창훈 한라대 명예총장은 말한다.

노무현 정부 발족과 함께 청와대 기자실이 외국 매스컴에도 개방됐다 .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정례회견에 나오는 외국인 기자의 모습은 거 의 찾아볼 수 없다.

회견 내용 중 대부분이 부정 정치자금 의혹에 대 한 해명과 한국 언론보도에 대한 비판 등 '국내 문제'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후 100년. 과거 제국주의 열강에 유린당한 한국이지만 지금 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반도체와 액정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발 뉴스가 전 대통령이나 정치가의 범죄 일색 이다.

한국의 혼란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다마키 타다시 일본경제신문 서울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