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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문학과 문학인으로서의 자세 - 金 眞 熙

2004.01.04 10:56

박정순 조회 수:157 추천:7


문학과 문학인으로서의 자세 - 金 眞 熙




문학은 우선 언어를 매체로 한 예술 형식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문제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언어의 세계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언어 속에서 사상과 감정을 토로하면서 생활합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일정한 예술 형식으로 표현된 삶의 기록이라 할 것입니다.
삶은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합니다. 오로지 언어 형식을 통해서만 삶은 그 의미가 부여되고 삶의 가치가 창조됩니다. 문학은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상상의 힘을 통하여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는 언어 예술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인간의 삶과 그 삶이 실현되는 세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학은 두 가지 점에서 순수하게 감각에 호소하여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음악이나 미술과는 다른 것입니다.
첫째, 문학은 오직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하고 인간의 삶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작가에 따라서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인생이라는 주제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문학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그 삶 안에 문학 작품의 뜨거운 불씨를 지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밤하늘에 별이 없을 수 없듯이 사람 사는 시공 안에는 문학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 문학은 언어 예술입니다. 언어는 대자연이라는 존재의 덩어리를 쪼개고 분절(分節)하여 이름을 붙이고 개념들을 만들어 내며 그 개념들을 주어와 술어로 연결하고 관계를 지음으로써 관념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생각과 언어는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내용이고 언어는 그 형식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의 형식으로 파악되지 않는 생각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든지, 비록 소리를 내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에서 언어를 통하여 사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언어만이 사물에 의미를 발생시킵니다. 간단히 말하면 언어는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의미체계(意味體系)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필연적으로 사상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문학의 성격 때문에 문학은 좋은 측면에서든지 나쁜 측면에서든지 독자에게 교도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문학은 종종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문학인은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어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켰고 인류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후견인이 되어 왔던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학에는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등의 장르가 있습니다. 그 개별적 문학 형식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논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르마다 표현 형식이 다르고 작가에 따라 문체가 다르지만 그들이 모두 함께 추구해 가는 가치는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입니다.
<모란이 피기까지>의 시인 김영랑은 문학이란 진실한 데에 그 생명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문학 작품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진실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깃발>의 시인 청마 유치환은 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모든 관심과 애정과 진실의 표현이라 했습니다.
<날개>의 작가 이상은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문학이 없다면 인간의 삶이 황폐해진다는 것입니다.
극작가 오화섭은 영혼의 승리를 문학 작품의 형식을 빌려 나타내는 것이라 했고, 소설가 이병주는 인간의 존귀함을 외치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춘원 이광수는 문학을 종교라고 비유했고,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는 종교보다도 더 고고하다고 하고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문학에서는 사랑, 진실 그리고 삶에 대한 모든 것이 찬란하고 영광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이 모든 표현들은 삶의 진실을 밝혀 인간의 정신을 풍부하게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과학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기술과 과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육체의 쾌락이나 아니면 인간을 파멸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섭생하는 양식입니다. 그래서 문학은 배타적인 종교 이데올로기와 같은 교리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그 삶을 순화시키는 삶의 경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인은 인간 정신에 양식을 제공하는 경전의 집필자로서 그 자세와 책임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예술의 한 형식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정서의 순화작용을 하지만 예술의 사회적인 기능은 사회의 정화작용인 것입니다. 한 작품은 그 작가의 삶이 노출된 것입니다. 따라서 작가의 삶이 순결하고 진실되어야 할 것입니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한 시대와 사회에 속합니다. 그는 자기가 속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증인이며 양식(良識)의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작가는 양식과 진실에 기반을 둘 때에만 인간의 진실을 억압하는 세력에 대항하며 사회의 부정을 막고 사회를 정화시키는 작가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문학은 언어 형식으로 이루어진 예술입니다. 언어는 곧 의미체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상을 운반합니다. 따라서 문학 작품은 어떤 형태든 사상을 전달하여 독자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에 작가의 사회적 책임은 막중한 것입니다.
작가는 한 시대와 사회에 대하여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작가는 인간의 삶과 정신을 고귀하고 풍부하게 하는 데에서 창작의 행복을 누려야지, 현대의 배금주의(拜金主義)와 야합하여 정신적으로 맴몬(Mammon: 황금의 神)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해서도 안됩니다.
그러자면 작가는 명철한 비평의식을 가지고 독자들의 의식을 무지와 충동적인 삶으로부터 각성시켜야 할 것입니다. 희랍의 고전 시대에 시인들은 예언자로서 추앙을 받았으며, 단테와 괴테 그리고 타골 등은 인간 정신의 잠을 깨운 성자들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작가의 가장 본질적인 임무는 창작 행위입니다. 창조의 기반은 자유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까뮈는 그의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말하기를, 논리가 파산하는 곳에서 창조는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는 무(無)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창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신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확보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본능적 충동이나 삶의 타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인생에는 어떤 모델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알 수도 없는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처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우왕좌왕하듯이 생계를 위하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틈바구니에 끼어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무엇인가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여기에 작가는 그의 고유한 상상력을 통하여 인류에서 무언가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가는 마땅히 고민하는 흔적이 있어야 하고, 깊이 사색하는 모습이 엿보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의 시대입니다. 영상매체로 말미암아 인간의 상상력은 고갈되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고 상상력을 통하여 의식에 표상을 꾸며 내는 양식과는 달리, 이미 꾸며진 영상이 직접 감각에 호소하기 때문에 자연히 상상력은 빈곤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이제 컴퓨터에게 물어 보면 컴퓨터가 사고하고, 컴퓨터가 자료를 제공하면 인간은 답만 챙기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지적 가치나 문화전통 같은 것은 별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펜을 들고 종이에 편지를 쓴다는 일은 이제 옛날얘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케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 인간의 사고방식은 아주 바뀌었습니다. 인간의 윤리적 가치는 쾌락으로 이동되었으며 무릇 정신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고 있습니다.
지금 문학은 위기에 대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문학인은 이러한 위기의식을 각성하고 인간정신의 침몰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간의 혼미하고 나태해진 정신을 자극하여 각성시키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한 생명의 숨결인 문학은 존속할 것이며, 문학인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참으로 인류 구원의 메시지를 창조해야 할 것입니다(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