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돌

2004.05.08 00:25

강학희 조회 수:993 추천:64

살아 숨쉬는 돌 / 강학희

오래 전 언니와 헤어져 이민을 오면서 서로 무언가 나누어 갖으려고
인사동으로 나갔다 가게 한 귀퉁이에 놓인 두 개의 돌을 만났다.
짙은 회갈색의 아주 작은 돌과 조금 큰, 두 개의 돌은
용케도 똑 같이 울퉁불퉁한 몸에 꽃 무늬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의미있는 눈 웃음을 지으며 하나씩,
작은 것은 내가, 큰 것은 언니가 소중히 싸가지고 돌아왔다.

이민 수속은 언니네가 먼저 시작하였지만,
결국 우리가 먼저 뉴욕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는데,
때 마침 바로 옆집 아파트가 비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한층을 마음대로 쓰며
김치찌개, 된장찌개, 이민의 서러움을 잊을 수 있는 먹거리란 먹거리를
맘껏 만들어 먹으며 즐거운 객지(?) 생활을 지냈다.

물론 그 때 우리들의 장식장엔 그 꽃무늬의 돌멩이가 놓여 있었지만,
우린 둘 다 별로 신경을 쓰고 바라볼 이유가 없었다.
함께 살았으니까.
더구나 언니와 나는 무위도식, 그야말로 느긋한 삶을 살았기에
늘 놀, 아니 배울 궁리에 신이 났었다.
전부가 다 새롭고, 신기하고, 볼만해서 눈이 반짝였다.
특히 뉴욕은 그 많은 박물관이나, 전시회, 음악회, 연극들...
도시 자체가 그야말로 흘러 넘치는 문화공간이었다.
세계가 한 곳에 몽땅 모여 살아 움직이는 세상 같아서
삼일에 한번씩 당직을 하는 남편의 고단함조차도 안중에 없었던
새 생활에 들뜬 철부지 아이 같은 세월이었다.

신나서 다니고, 신기해서 떠들고, 이상해서 먹어보고,
마치 실험(?) 기간 같은....
그리고 그 것이 그를 더 신나게 했는지...
남편은 한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그 당시 물품세가 없던 뉴저지로,
업 스테이트 뉴욕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천개의 섬으로,
필라델피아로, 워싱턴으로 두 가족을 데리고 잘도 다녔다.
그렇게 남의 나라에 사는 서러움도 모른 채 우리 자매는 시시덕거리며 살다,
언니 네가 형부의 친구가 사는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로 자리를 옮기며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유난히 즐겁던 두 해의 삶이 그 허전함을 휑뎅그레 남기고 떠난 후
나와 아들은 힘이 쭉 빠져 창가에 앉아 턱을 괴는 시간이 늘어갔고,
언니가 그리우면 그 돌을 쓰다듬곤했다.
그러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주를 하고, 동부와 서부의 문화권의 차이,
특히 캘리포니아의 캐쥬얼한 생활 스타일이나,
사계가 늘 따스한 봄날 같은 기후는 사람을 자꾸 밖으로 나돌게 하였다.

게다가 새로 개업한 바쁜 생활에 적응하느라 곱게 싸가지고 온 돌은 짐 속에서 잠을 자고,
언니와 나, 우린 둘 다 늘 시간에 쫒기면서도 사는 곳이 부산과 서울의 거리 정도,
그러니까 비행기로 한시간 정도의 거리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핑게로,
봄엔 부활절 미사를 같이 드린다고, 여름엔 아이를 한인 캠프에 보낸다고,
추수감사절엔 식구들이 꼭 만나야 하는 거라고,
신년엔 싸두었던 한복을 꺼내 입고 새배하고 떡꾹 끓여먹고, 윶놀이를 해야한다고,
어느 날엔 갑자기 그 동네 바닷가 레스트랑의 스파게티가 먹고싶다고,
어느 날엔 함께 일하는 남편과 티격태격거리고 속이 상한다고.... 이래저래 툭하면
건수를 만들어... (실은 이 넒은 세상에 가까이 있는 것이 너무 신나서) 왔다 갔다 하면서
그 돌은 자연스레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 갔다.
더구나 언니네가 새 사업으로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그 돌은 아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언니를 갑작스런 병으로 잃은 후, 그녀의 짐을 정리하게 되었고,
결국 그 돌은 내게로 오게되었다.
큰 것, 작은 것을 나란히 거실 한편에 놓자, 그들은 예전처럼 한군데서 호흡을 하게 되었지만,
나는 갑자기 쉰살의 나이에 위암으로 떠나간 언니의 주검에 분노와 회한으로
시름시름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앓는 마음처럼 거실엔 먼지가 수북히 쌓이고,
언니를 기억 할 수 있는 많은 물건 중의 하나인 그 돌은,
그저 거기에 놓인 채로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지냈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언니의 손 떼 묻은 가구들과 장식품들을 닦으며,
그 돌도 씻기 위해 물 속에 담그고 돌아서려는데
문득 물방울이 뽀르륵 떠오르기에 들여다보니,
세상에!
돌은 오랫동안 목마름을 참았는지 물 속에서 숨을 몰아쉬며
꼴깍 꼴각 물을 마시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거였다.
마른 몸이 차오르는지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드러나며
꽃이 생기를 찾아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살아 숨쉬는 그녀, 그녀는 내내 눈물을 감추고 목말라하며 나를 기다린 거였다.
가만 가만 몸을 씻겨 내 책상 머리에 앉힌 언니, 우린 아침 저녁으로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삶을.

그녀는 지금도 내 컴 앞의 활짝 핀 미소,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의 곁에 머물며 오늘도 "운전 조심해!" "잘 갔다 와!"
"피곤하지?" "그 노래 참 좋다~" 그녀가 살아나 , 나와 함께 하루를 산다.
우리는 애초부터 그 바위의 한 조각, 서로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한몸이었다.


작가 메모:
일년 중 제일 아름다운 계절, 오월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값진 것이어서, 성모 어머님께 봉헌하며 오월을 성모성월이라 한다. 또한 우리들의 어머님, 아버님께 감사드리는 어버이의 달이다. 그러나 내 삶에서의 오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다.

겨우 암이란 징그런 손길을 피하신 어머니마저도 데려가신... 오월은 어머니의 기일이, 유월엔 가신 언니의 생일이, 8월 남편의 생일 날은 묘하게도 아버님의 기일이다. 아버님, 하나인 언니, 모두 일찍 암이라는 고통의 통로를 지나시며, 알게 모르게 삶에서 저질러졌을 오류들을 눈물로 성찰하며 가셨다.

꼭 이맘 때부터 도지기 시작하는 심란병은 유독 내게는 아직도 허락하신 이 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제 올해가 한국나이로 아버님이 돌아가셨던 나이,이렇게 덤으로 주시는 시간 안에서 그 분이 내게 바라시는 것은 무얼까? 더 깊이 묵상해야겠다.내게 불어넣어진 혼령의 바람과 주어진 시간과의 혼합인 내 삶의 덩어리, 내 돌 하나가 목마름 채우고 맑고 향기로운 꽃피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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