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서

2004.09.26 12:23

강학희 조회 수:587 추천:71

장례식에서 / 강학희

이승에서의
마지막 한 칸 방에 누운 너를 본다
네 위에 놓인 수 많은 꽃들이
마치 살아남은 자들의 죄를 덮으려는 것 같아서 싫다
네 가는 문전에서 처량히 부르는 노래도
그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는 변명의 소리만 같아서 더욱 더 싫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소유지 한 뼘 남짓한 어둠 속으로
한 줌의 흙과 함께 널 보내는 게
마치 죽어 썩을 육신의 무참함을 덮으려는 몸부림 같아서 싫다

허나 한 줌 흙으로 돌아 갈 재주 밖에 없는 우리
생성된 그 땅에서 만날 밖에
훠어이 훠어이, 딸랑 딸랑,
이제 가면 언제 보나.... 잘 가시게나. 허나 여보게,
싫어도 할 일이 이 밖에 없어
우린 또 누군가의 주검 앞에서 노래부르며 꽃을 놓고
그 위에 흙을 또 뿌릴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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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사랑하는 피붙이를 보내어도
살아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꺼이 꺼이 우는 울음도 실은 나의 설움,
남은 자의 외로움이었습니다.
방 안 가득 꽃이 즐비한 마지막 얼굴보기(viewing)도
실은 허전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뿐이었습니다.
불러주고싶은 노래도 차마 보내고 싶지않은 가슴의 한 끝일 뿐이었습니다.

불숲으로 들어가는 혈육을 물끄럼히 바라보는 건
그저 눈망울 뿐 생각이 없는 하얀 공허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지친 몸은 저도 몰래 수마에 이끌려가고,
주린 배를 채우는 일 또한 버릴 수 없음이 왜 이리 속상한지요...
죽지않겠다고 눈물에 비벼 꾸역 꾸역 목으로 넘기는 밥알들....
참으로 무참한 형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살아남은 자는 그 외에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일 말고는....
또 누군가 이 설움 당한다하여도, 
우리는 이 밖에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음을 알지요...

울며 꽃을 뿌리며 흙을 덮는 관습적인 일들을 할 뿐이지요.
그렇게 오고 가서, 언젠가 그 곳에서 만나지겠지요?
무엇이 되었든...
인생의 고리를 따라 돌며 돌며,
나는 너의, 너는 나의 무엇인거겠지요.
언제 어디에서 만나든 기억하려면 무슨 흔적은 남겨야 할텐데... 
그게 무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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