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카 수지

2003.06.09 19:05

강학희 조회 수:585 추천: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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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카 수지 / 강학희

내 조카 수진이는 어려서부터 "탐 보이(TOM BOY)"라
불리며 치마 입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바지를 고집하더니
어느 날인가는 혼자 서서 소변을 보다가 옷을 다 적시고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도 맞은 아이였습니다.

운동을 좋아하여 여자 축구(Soccer)팀에 들어가 뛰고
차고 하더니 그 기술(?)로 버클리 대학 4년을
장학금으로 나왔지요. 졸업 후 이모부의 영향인지
시카고에 있는 의대를 다녔더랬는데...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엄마의 위암선고에 UCLA로
전학하여 집을 오가던 중 동부에서 온 친구들의
등살에 라구나 비치로 파도타기를 나갔다가 사고가 나서
척추를 다치고 대소변도 못가리는
하빈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사고 한 달 후 엄마의 장례식에도 휠체어를 타고 와
마냥 울기만하다 병원으로 실려갔지요.

우리 인생에서 불행은 꼭 쌍으로 온다하더니...
쉰 하나의 언니의 죽음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자가
된 조카, 난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하느님을 원망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이유도 모를 분노에 휘둘리며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되돌아보니 역시
하느님의 큰 뜻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항상 무엇이나 잘했던 아이는 매우 독선적이었고,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데 이젠 엄마도 잃고
육신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막바지에 다다르니
겨우 뒤돌아보고 지금까지의 내가 얼마나 감사해야했던
사람이었나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휠체어를 타고 흰 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당당히 회진하며 인터뷰하는 미국 T.V의 인간승리
프로그램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져 끝까지 볼 수가
없었지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장애의 인생을 용감히
걸어(?)가는 게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사고 전에는 온전한 몸이었으나 닫힌 마음으로 보았던
세상을 이젠 불구의 몸이나, 열려진 마음으로 바라보는
걸 보니 이제서야 그 고난의 참뜻을 깨닫게 됩니다.

더구나 좋은 집안의 의사인 남자 친구네에선
변함 없이 걸혼을 원한다고 하니
"그렇기 때문이아니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주는
그들의 순수한 사랑에 감탄하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열삼히 살아가는 sue! 참으로
"고맙다!"

(지금 수진이는 스태포드 병원 재활 물리치료 전문의로
척추장애자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여성의 창" 컬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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