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수필: 선물1.}

2010.06.25 14:16

강학희 조회 수:9117 추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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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1. / 강학희


"선물"을 생각하면, 지금은 계시지 않은 부모님께 참으로 미안하고도 감사
한 마음이다. 내 생애에 가장 좋은 선물이셨던 부모님께 선물 투정을 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8살쯤이었던가, 생일이 12월22일이라서 늘 생일 선물을
크리스마스선물로 받는 것이 속상해서 이젠 "크리스마스 선물과 함께 생일
선물을 주면 절대로 받지않겠다"고 선언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치기였지만, 그 땐 왠지 나 혼자만 손해보는 것
같은 억울함에, 부모님이 그 것을 이해해주시길 바래서 그랬던 것 같다.

그 후, 다행히 여유도 있고 신식이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늘 크리스마스
와 생일선물을 따로따로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내
마음을 잊지 않고 배려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했던
지... 무엇이나 나의 바램을 늘 기억해주신다는 그 믿음이 내 삶을 얼마나
부유하게 했던지...

커가면서 나도 누군가의 바램을 꼭 기억하며 살아야겠다는 것을 절로 배우
게 되었던 것 같다. 어미가 되어서는 종종 이 어린 시절 우스개를 이야기
하며, 아이들에게 비싸고 싼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도 감사
나 축하를 전하는 카드나 선물이 우리 마음을 얼마나 감동시키는지를, 그
작은 표현들이 우리를 얼마나 끈끈하게 묶어주는 끈이 되는지를 강조하게
되었다.

지금도 아들아이와 며느리, 그리고 딸 같은 조카아이들은 그런 옛 이야기
를 들어서인지, 나름대로의 배려에서인지 언제나 내 크리스마스선물은 생
일 선물과 따로 따로 준비해 가지고 온다.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도,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또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크리스마스추리 밑에 올
망졸망 작은 선물들이 즐비하게 놓이면 금새 가슴이 따스해지고 뿌듯해진
다. 어른이나 아이나 빨리 선물을 뜯고 싶어하는 마음에 크리스마스이브
디너는 늘 건성으로 먹어도 배가 부른가보다.

식구들이 주-욱 둘러앉아 선물을 주고 받으며 풀어보는 즐거움은 당연 일
년 중 가장 큰 즐거움이지 싶다. 선물을 풀어놓은 포장지가 방안 가득 쌓
이면 훈훈하게 차 오르는 삶의 온기..., 한해의 모든 시름을 다 데우고도
남는다. 가슴 속 어딘가에 남았던 응어리들마저 스르르 스러지고 한동아리
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심정이 온화해진다.

생각해보면 크거나 작거나, 두 개이거나 한 개이거나 선물은 함께 기억하
고 나누는 그 마음이 감사하고 반갑고, 무엇보다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
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더불어 아직은 함께 웃고
떠들수 있는 살아있는 시간의 축복에 새삼 감격하게 된다.

생일이거나 꼭 기억하고 싶은 기념일이거나, 혹은 누군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한 선물이거나, 그 것은 화폐적 가치가 아니라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과 그를 위해 기꺼이 소모하는 그 시간의 가치에 있는 것이기에 그 배
려의 마음씀이 바로 선물의 진정한 의미이다

나는 벼르고 별러 무슨 부담스런 선물을 주고 받기보다는, 받고 짐이 되지
않는 작은 선물들을 별로 큰 일 아닌 일에도 서로 주고 받는 일을 즐긴다.
그냥 내가 전해들은 다른 이의 작은 기쁨이나 슬픔이라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선물, 때론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오랫만에 만나서라거나 등등,
뭔가 나누고싶어서 주는 작은 미소 같은 쪼끄만 선물들을 아주 많이 나누
면서 살고 싶다.

딱히,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서로 생각해주는 그런 마음의 만남이
참 좋다. 잠시 차 한잔 나누거나 식사 한끼 함께하러 나갔을 때, 문득 누
군가 내게 내밀었던 이런 예상치도 못한 작은 선물을 받고 감동했던 기억
은 늘 내 가슴에 각인되어, 가슴이 훈훈하다.

비록 별 것 아닌 작은 수첩이나 메모지, 혹은 작은 컵받침이어도 그런 선
물들은 그 마음이 아까워서 늘 오래 간직되며 볼 때마다 그 사람 생각이
난다. 나도 살아있는 동안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간직 될 수 있는 그런 온기
로 남아 그 사람과 마음을 공유하고 싶다.

거리를 지나다, 아- 이 핀은 누가 꽂으면 딱 맞겠다, 아- 이 컵은 그 사람
이 쓰면 참 좋겠다... 아- 이 바다엽서는 그 애에게 보내고 싶다.... 등등,
누군가를 기억하는 순간이 너무나 좋다. 기실은 기억나는 누군가와 함께하
는 그 시간이 즐거운 것이겠지만, "너 한 번 이 것 써 볼래? 어제 네 생각
이 나서 샀어." 아님, "이 거 너 가지고 다니기에는 딱 맞을 것 같은데...
이 노트 옆에 두고 메모하렴!" " 저기- 이 것 별 건 아니지만 자주 손을 씻
는 일을 하시는데, 한번 발라보셔요. 손이 보들보들해져요!"하고 내밀고 싶
어 자디잔 선물들을 산다.

이런 작은 것들을 곱게 포장해서 그리운 이 만날 때 가만히 앞으로 밀어주
는 손길은 부끄러워 조금 떨리지만, 그 건 마치 "세상은 나 혼자야!" 철저
히 가두었다 문득 딱딱한 껍질을 탁- 부수고 나온 따끈한 군밤의 노란 속
살처럼 얼마나 고소하고 말랑한 느낌인지... 받아 본 사람만 아는 맛이다.
맛 본 사람은 잊지 못할 맛이다.

이 것이 바로, 내가 별것(?) 아닌 것을 잘 들고 다니는 촌스런 취미를 가지
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누군가에게 주려고 선물을 살
때 선물을 주기도 전에 제일 먼저 선물을 받는 사람은 자기자신이다. 기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줄 누군가가 있다는 행복감을 선물 받게 된다.

오늘도 내 앞에 있는 작은 소품들에서 그런 누군가의 마음이 읽힐 때, 나는
꼭 갓 지어낸 폭신한 솜이불을 덮고 있는 기분이다. 새삼 산다는 것이 정겨
워지고 따뜻해진다. 결코 우리네 삶이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야 끄덕인다.

아주 작은 선물들, 작은 엽서나 귀여운 볼펜, 꽃향기나는 향긋한 메모지나
라벤더 향의 보라빛 향수비누, 복숭아 냄새 폴폴거리는 로션이나 혹은 천진
한 아기 웃음이 그려진 커피머그, 문지르면 솜사탕 단내가 솟아나는 향수지,
더운 물에서 활짝 피어나는 달지근한 꽃차 등등.... 이 작지만 향기로운 마
음들을 누군가의 가슴에 솔솔 뿌려주고 싶다. 더불어 나도 퐁.퐁.퐁 빠져들
고 싶다.

시간이 나는 날 그냥 목적 없이 쇼핑 몰에 들어가, 그리운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는 작은 것들과 눈을 맞추고, 바시락 바시락 포장지에 감싸서 부르고
싶은 이름을 위에 써 붙이는 기쁨이 얼마나 달콤한지.... 바로 이런 때에
나는 행복의 얼굴을 만난다. 살아 있음의 작은 황홀에 빠지게 된다. 작은 쇼
핑의 마니아가 되어 내 서랍에서 누군가에게 가기를 기다리는 것들이 내 삶
의 엔돌핀이 되어 생기를 돋운다.

우리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온갖 빛으로 수북히 쌓여가 듯, 우리 삶의
정겨운 만남들이 결고운 갈피로 내 기억의 방에 쌓이는 한 크게 이루어 놓은
것은 없어도 그리 후회스러운 삶은 아닐 것만 같다. 눈감아도 보이는 얼굴은
정겨운 얼굴 뿐이지 않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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