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 떡갈나무 사랑}

2010.01.11 11:45

강학희 조회 수:8461 추천: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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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갈나무 사랑 / 강학희 ♤

나의 침실 왼쪽창가에는 늘 푸른 아름드리 커다란 떡갈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는 왼팔이 너무 장대하여 발코니에 팔을 축 늘어뜨리고 노래 부른다.

그의 살 비늘들은 끝이 날카로워 내게 오는 길목마다 콕콕 박혀서 바스락 바스락 내가 올 때까지 노래 부른다. 일일히 손 대어주기 전에는 절대 물러서지않는 끈질김으로 그는 나를 부른다.

그렇게 칠년 애틋한 그의 구애는 부드러움을 갈망하는 나의 애증에 맞서느라 갈수록 시퍼런 집념으로 우거지고 묵묵 어둠만이 그득한 창가 그의 메마른 외침, 그의 비명 같은 닢.닢 흔적만 쌓여갔다.

끝내, 나는 어느 폭군 같은 겨울바람처럼 혹독하게 그의 장대한 왼팔을 절단했으나 차마 그의 얼굴은 바라 볼 수가 없어 모르는 척 자리를 오른편 창가로 옮기었다.

그래도 안쓰러워 곁눈으로 바라보니 이번엔 한켠으로 기울어진 못난 오른팔이 마음에 걸려 차라리 그마저 어찌 해 보고싶은 충동으로 가슴이 뛰었지만 그의 쓸쓸함이 두려워 그냥 두기로 하였다.

높은 침대에 누워 그를 바라다 보면 그는 떨리는 몸으로 물결치듯 나를 부르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그는 오른쪽에서 왼쪽의 바람을 밀어내며 몸을 비틀어 노래를 삼키고 있었다. 눈물 흘리 듯 밑으로 축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바로 그 때 부터 우리 사이에 공허함이 흐르기시작하는 거였다. 왜 그런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가 사그랑거리며 노래 할 때 늘 왼편에서 나던 어떤 소리가 없는 적막함 때문이었다.

아, 그래.... 그러고보니 그가 노래를 멈추고 나서는 가을이면 으례 찾아와 수런대던 수리부엉이 내외가 오지 않는구나....

사실 그 수리부엉이의 울음 때문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 밤중에도 "훠어이! 훠어이!" 소리를 쳐서 식구들의 단잠을 깨우기도 여러번 정 힘들면 차라리 끝 방으로 가라고 퉁박을 맞았어도

꼭 내가 버리고 가는 것만 같아 옮겨가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구슬픈 소리에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젠 오지 않는 부엉이 식구마저 궁금하고 밤마다 오른팔을 떨며 끙끙대는 그의 앓는 소리 또한 심상치 않아 잠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어느 결에 시간은 흘러 여름도 거의 다 지나고 입추를 넘어 가을이 다가올 때가 되었다.

이젠 시름시름 앓을만큼 앓은 그와 나도 그 여름동안 왼팔과 왼쪽가슴에 얼추 그리움을 채워넣으며

어느 새 소리 없이 한발 한발 내 안으로 들어선 그는 나와 한 몸으로 굳어 기다림의 뿌리를 뻗어가기 시작한다.

한 몸으로 같이 울고 채워가며 이젠 창 밖이 아니라 한 침대에서 딩굴며 내 안에 뿌리를 내리는 떡갈나무.

지금 내가 가을을 기다리는 건 수리부엉이를 초대하여 함께 흔들리며 전처럼 노래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잘라냄이 이다지도 어려울진대 사랑할 밖에.... 증오의 저 밑바닥엔 너와 나 똑 같은 바램이 물결치고 있었음을,

이 가을엔 그와 나, 수리부엉이가 하나로 노래하리라.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여리고도 간절하게 그 목쉰 듯한 부름의 선율을 꿈꾸며 나는, 다시 왼쪽 창가로 옮겨앉아 나는, 우리의 가을을 기다린다.

아- 가을아, 닢닢의 기억과 그 노래를 들려다오. 나는 그 사랑의 그늘, 그 무성함과 짓눌림 그리고 그 끈질김의 어둠마저도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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