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과의 마지막 대화

2005.09.26 13:49

향희 조회 수:186 추천:15


"죠, 오늘 병원에 좀 와 줄수 있겠니? 폴이 너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가족들이 네가 좀 와줬으면 해서 전화했어"
전에 함께 에이즈 병동에서 일하던 간호원의 전화였다. 이때는 내가 에이즈 병동을 고만두고 다른 병원의 호스피스병동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달도 안 됐을 때였었다. 폴은 내가 에이즈  병동을 떠나기 전에  많은 시간을 돌보고 친구처럼 친했던 환자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폴의 눈만큼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비취의 녹색과 파란 하늘의 중간색에, 마음 이 맑아서 인지 그윽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아니 사람을 끌어들이는 어떤 마력이 있는 그런 눈이었다.

그는 시카고의 명문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공부하고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서 일하고 있던 31살의 매력적이고 장래가 촉망되는 멋쟁이었다. 이 세상이 마치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사는 것을 즐기는 그런 사람중에 하나였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러가지 운동으로 다저져 건강하기만 했던 그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됐다. 검은 반점같기도 하고, 헌데  비슷하기도 한 것이 생겼는데 낫지를 않고 자꾸 펴져가기만 하는 것이었다. 별거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시간을 내 어 의사를 찾아 갔을때, 그에게 의사가 한 말은 사형선고였다.  살코마 -  에이즈의 합병증 중에 하나로  일종의 피부암 - 라고  했다. 결국에는 내장에까지 퍼지는, 그래서 폐근육도 심장근육도 돌덩이 같이 굳어버리는, 에이즈 환자들에게는 흔한 합병증이라고 했 다
에이즈라니? 어떻게 나한테?  설마 그럴리가?
몇달간은 견디기 힘들었던  정신적인 고통이외에는 일상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었고, 바쁜 그의 일과는 잠시잠시 그 고통을 잊을 수 있 게 까지 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몸에서 얼굴에 까지 퍼지기 시작하자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일을 고만두고 시카고로 돌아 온 것 이었다.

내가  "하이"를 하며 처음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잡지에 나오는 멋있는 모델과 얼굴을 마주하고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 에 잠시 빠졌었다. 적당하게 그을은 가무잡잡한 피부에, 건강하게 발달된 근육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그 아름다운 눈과 미소, 그에게 서는 아직 전형적인 에이즈 환자 특유의 모습은 없었다. 여기저기 피부를 덮은 그의 동반자, 살코마 이외에는.  아, 얼마나 낭비인 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이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는게. 그 아깝다는 생각은 그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더 깊어져 갔다. 지 적인 수준도 높았고 무엇보다도 내면세계가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가 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 나서 그의 파트너는 미련없이 떠나가 버렸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절망과 머지않아 닥쳐 올 죽음 뿐이었 다. 가족들 마저도 손 잡는 것조차도 꺼려할 지경이었다. 오히려 우리들이 환자들을 포옹하고 또닥거려 주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쳐 다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곳의 간호원들은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
하는 시선으로.
하긴 다른 병동의 간호원들이 가끔 일 손이 부족할때  도와주러 와서도 제일 먼저 찾는게 마스크, 장갑, 그리고 까운이었으니까… 같 은 간호원이면서도 우리가 아무 꺼리낌 없이 환자들을  만지고 간호하는걸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그 병에 대해선 공포감밖에 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들을 나무랄 수 만은 없었다.   일식을 보고 신이 노했다고 제사를 지냈던 원시인들  처럼,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는 석기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폴 하나를 낳고 폴이 어릴 때 이혼을 했다는 그의 엄마 조차도 가끔, 아주 가끔 찾아 와서는 멀찌감치 앉아서 그냥 일상적인 얘기만  나누다가는 금방 가버리는 것이었다. 손도 한번 잡아주는 일 없이.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그런 소외감이 그를 더욱 더 외롭고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으리라는  건 말 할 나위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정성어린 간호와 적극적인 치료방법으로 급한 위기는 지나고 집에 가도 좋다는 담당의사의 퇴원지시가 내려졌다. 퇴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표정에서 누구나 한 눈에 알수 있었다. 덩그러니 쓸쓸한 아파트에 혼자 내 팽개쳐 질테니까 말이 다. 찾아주는 친구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도, 필요할 때 물 한컵이라도 떠다줄 수 있는 사람도 하나 없는 병실보다도 더 고 독한 자기 혼자만의 방으로 말이다. 퇴원하고 나서도 외로울 때면 가끔 전화가 오고, 그러던중 나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다.

새로운 분위기에 익숙해 지기 위해 한창 바쁜때였다. 그때 전화가 온 것이었다. 내가 와 줬으면 좋겠다는 가족들의 부탁이라고 했다. 왜 가족들이? 폴은 어떡하고? 여러가지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날 퇴근하는 길로 바로 폴의 병실로  찾아갔다. 그는 이미 나의 'Hi' 에 대답도 할 수없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미소도  보여줄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아름다운 눈은 굳게 닫힌채 열릴 줄을 몰랐다. 그에게는 이미 모르핀 IV (정맥주사)가 시작되었 고, -- 마지막으로 고통없이 편히 갈 수 있게 모르핀을 지속적으로 주사해 주는 것이 통례였다.--  목에 가득찬 가래는 끄릉끄릉  금방이라도 그의 숨통을 막아버릴 기세였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목에서 가래를 뽑아주고 그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며 내가 온  것을 알렸다. 그의 손을 잡고 앉아서 그동안의 일을 그에게 물었다. 비록 혼수상태이긴 하지만 내가 왔다는 것을, 내가 자기에게 하 는 말을  다 듣고 있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혼수상태라는 것은 우리가 보는 관점에서의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지 실제로 사람의 오감은, 그 중에서도 청각과 촉감은 마지막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고 또 경험으로도 알고 있었기에 혼자만의 독백이 아닌 그와의 대화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나 는 정말로 그의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담당 간호원에게서 들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그가 병원에 온 이유는 약물중독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아리도록 아파왔다. 그러 나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앗다. 허지만 나를 진짜 놀라게 한것은 약물의 투여량이 절대 로 치사량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자살은 할 수가 없었고 주위 사람들이 그의  병세가 악화됐다고 생각할 정도로만  약을 먹은 것이었다. 그리곤 혼수상태에 빠져들어갔다. 아마 그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이성적인 결정이었으리라. 나 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살아오던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을 보아왔다. 폴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생산적인 아닌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고 항상  말했었으니까…
그래서 병원으로 실려오고,  그때  그의 증세는 악화된 합병증으로 보였다. 그가 계획했던대로. 그래서 거기에 맞게 치료가 시작되고  여러가지 검사를 하던중 약물투여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되살아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바닥으 로의 곤두박질이었다. 마치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마음을 따라 잡으려는 듯이.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마치 피크닉을 온 사람들 같았다. 가족대기실에서 음식을 시켜다 먹고 스포츠 중계를 보고 흥분하며, 그들의  아들의, 오빠의, 동생의 목숨이 빨리 끊어져 자기들의 일상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가족들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시간을 선택하는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자연사나 병사일 경우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언제 갈것인가 또  떠날  때 곁에 있어 줄 사람도 선택한다.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는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참으로 신비롭다고까 지 할 수 있는, 우리가 모르고 평생을 사는 우리의 초능력이다. 가끔은 왜 그런 대단한 정신력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는 적절하 게  쓰지 못 할까를 의아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폴의 몸은 이미 다른 세계에다 한 발을 들여논 상태였지만 나머지 한 발을 아직도 이 세상에서 띠지를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서 가족들은 그가 보고싶어 할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을 모두 불렀다. 심지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그를 매정하게 떠났던 파트너도 불렀 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 여기에 있다. 왠지? 아직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고통 은 첩첩이 쌓이는 목에 가래와 비례해서 점점 더 해지고 있었다. 그때 그들이 생각해 낸게 나였다. 다른 간호원들과 얘기를 하다가  나와 폴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알아낸 것이었다.
폴과 단 둘이가 되었다. 모두들 나가 주었다. 그의 목에서 가래를 다시 한번 청소해주고 침대 옆에 앉았다. 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와의 마지막 대화가 시작된것이다. 그의 숨소리가 훨씬 조용해지고  표정도  편안하게 보였던게 나의 착각만은 아니었으리라.  

정말 네가 기다리고 있었던게 나였니? 왜 아직도 여기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거니? 그냥 툭툭 털고 떠날 수는  없었니?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너에게 남겨진 일이었니? 난 네가 그냥 잘 견디고 있는지 알았어. 이런 결정을 할  정도로 고통이 컸었구나. 얼 마나 외롭고 힘들었니? 그럴 때 도움이 못 돼 주어서 정말 미안하다. 이런식으로 네가 나를 찾을때까지 너를 보러오지 않ㅇㅑㅆ던걸 용서 해 줄 수 있겠니? 또 비록 네가 기다리고 있었던게 내가 아니였다해도 이렇게 괴로운 이 육신을 이젠 훨훨 떠나라. 아무 미련 가지 지 말고 빨리  이 힘든 곳에서 자유로워져라.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는 죽음이 축복이 아닌, 이런 고통없이 너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택할 수 있기를 빌자꾸나.

그리곤 전에 함께 나누었던 얘기들, 나의 최근의 상황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12시가 다 돼서야 그의 병실을 나왔다.

그 다음날 오전에  일하고 있는 병원으로 전화가 왔다. 폴이 새벽 2시 경에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던 고퉁을 끝냈다고.

오늘은 폴을 찾아갈 필요가 없구나.
그의 고통이 끝났구나.

창 밖으로 보이는 미시간 호수위로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보며 폴에게 다시 한번 작별의 인사를 했다.
폴, 안녕.
꼭 폴이 그위로 날라갔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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