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萬波息笛]을 생각하며 / 최영식

2005.01.06 11:04

강학희 조회 수:254 추천:19

만파식적을 신화나 전설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기엔 등장인물들이 역사에 존재하며 연대까지 분명하다.
일연스님의 저작인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2 만파식적에 나와있는 이야기다.

<<신라 제 31대 신문대왕[神文大王]의 휘[諱]는 정명[政明]이며 김씨로서, 개요[開耀]원년 신사 7월7일 즉위하였는데, 성고[聖考]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를 지었다.
이듬해 임오 5월 초하루에 해관[海官]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기를
[동해 가운데 작은산이 있어 떠내려와 감은사를 향하고 있는데, 파도를 따라 오락가락합니다.]하니
왕이 이상하게 여겼다. 그래서 일관[日官] 김춘질에게 명해 점을 치게하니, 아뢰기를 [성고께서 지금 해룡이 되시어 삼한[三韓]을 진호[鎭護]하시며, 또 김유신공이 삼십삼천[三十三天]의 하나로 이제 내려와 대신[大臣]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두 성인께서  덕을 같이하시어 수성[守城]하는 보배를 내시려고 한 것이니, 만약 폐하께서 바닷가로 행차하시면 반드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큰 보배를 얻으실 것 입니다.]하였다.>>

이견대 앞에는 대왕암이 위치해 있다. 바닷가의 이름은 용당포[龍堂浦], 감은사에서 보인다.
문무대왕의 해중능이다. 세계 유일의 바닷속 무덤일 것이다.
삼국통일을 이루고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었다. 문무대왕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이다.
1300여년 전의 일로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연대와 인명이 등장하는 장엄한 대 서사시가 만파식적에
어려있는 것이니 그 감동을 벅차서 어찌 말로 다 하랴.

<<왕이 기뻐하며 그달 7일에 이견대로 행차하여 그 산을 바라보고 사신을 보내어 살피게 하니, 산세가 거북의 머리처럼 생겼고 그 위에 한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사신이 와서 아뢰니, 왕은 감은사로 행차하시어 유숙했다.
이튿날 오시에 대나무가 하나로 합쳐지는데, 천지가 진동하고 풍우가 치면서 7일 동안 날이 어두워졌다가 그달 16일에야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졌다.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으로 가니 용이 흑옥대를 가져다 바치므로 영접하여 함께 자리에 앉았다. 왕이 묻기를 "이 산과 대나무가 떨어졌다가 다시 합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용이 말하기를 "비유컨데 한 손을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을 쳐야 소리가 나니, 성왕께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상서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베어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왕고[王考]께서 바닷속 대룡[大龍]이 되시고, 김유신이 다시 천신[天神]이 되어 두 성인께서 한마음이 되어 이런 값을 정할 수 없는 큰 보배를 내시어 저로 하여금 바치게 한것입니다" 하였다.>>

<<어가[御駕]가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고에 보관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오던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졌으므로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라 일컬었다.>>

만파식적에 관심을 가지기는 십여년 전, 이월에 문인 몇분과 경주 문화답사를 간 김에 마지막 신라인이라 누구나 인정하던 윤경렬선생댁을 방문해서다. 1916년 함북 주을에서 출생했지만 49년부터 경주에 정착해 우리 문화와 신라문화를 평생 찾고 연구하며 계승하는 일을 하신 분이다.
양지마을 고청정사를 방문, 인사를 드렸는데 그분의 사랑방에 걸려있는 액자가 만파식적이었다.
그 후부터 까닭없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진 풍파를 수 없이 겪고 산중에 들어와서야 간절한
소망으로 만파식적이 가슴 속에 내려 앉으며 생명력을 가지고 꿈틀거리는 거였다.

처음엔 힘든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스님이 염불을 외듯, 믿음을 가진 이가 기도를 하듯, 그런 심정으로 마음을 정갈히 하고 붓을 잡아 화선지에 써나갔다. 더러 잘된 것이 있으면 찾아온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다가 2003년엔 부지런히 써놓고 방문하는 분들께 모두 나눠드리기 시작했다.
일년만 그렇게 하자고 마음 먹었다. 단 한 점도 같은 글씨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내게든 지인에게든
만가지 풍파가 가라앉길 바랬다. 그런 간절한 바램 때문이었는지 내게도 좀처럼 올것 같지 않던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고 받아간 분들도 좋은 일들이 생기더라는 말을 듣는 횟수가 늘어났다.

이제는 세상이 화평해지기를 비는 간절함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음을 여미고 정성을 드려 만파식적을 쓴다. 모든 이들이 만파식적의 소리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가지고서 말이다.
내 남 할 것 없이 모두 만파식적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대에 만파식적을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오던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 지는 기이한 힘, 그 힘을 각자 마음 속에서 되살려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을유 새해, 밝은 희망을 가지고 모두 아름다운 날을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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