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박 정 순

걸어온 내 발자국을
뒤 돌아 볼 수 있게 하는 가을에는
보다 작아져서
한없이 낮아지는 것을 배우게 해 주소서

추수한 곡식을 먹으며
씨앗을 뿌린 이의 땀방울과
가꾼 이의 거친 손길을 기억하여
어느 때 보다 마음만은 풍요롭게 해 주소서.

홀로 왔다 홀로 떠나는
유한의 생에 대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배우는 생각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게 해주소서.

꽃이 피고 지듯이
사랑할 때와 헤어질 때가 있기에
그래서 가을에는
더 많이 사랑하게 해 주소서





향기로움에 치맛자락 끌고 홀려 걷듯이
가을은 드문 드문 사색의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리움에 사랑까지 얹어서 인사드리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