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걷다가

2004.11.22 11:00

장미숙 조회 수:703 추천:21

빨래를 걷다가..
                                  - 장미숙

늘 새로운 공부를 즐겨 하고 아마추어 마라토너이면서
성실한 직장생활로 가족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편,
많은 독자에게 행복을 배달하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시를 쓰면서 조그맣게 여성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아내,
밝고 명랑한 성격에 고운 목소리로
멋진 성악가의 꿈을 키워 가는 대학 4년생 딸,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진취적인 생각으로
학구열이 강하고 인상이 좋은 대학 2년생 아들..
이렇게 구성이 된 우리가정이다 보니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언제나 건전한 토론장이 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아 조용할
날이 없는데.. 아뿔사! 큰 일이 난 것이다.
아내이고 엄마인 내가 발코니에 널려있던 빨래를 걷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기분 나쁜 물체?..
오래 전에 본 듯한 투명한 풍선을 손에 든 순간 아찔한게
눈앞이 깜깜하다.
어머나! 이를 어쩐다지? 이거 누구야? 기가 막혀 정말..
어디서 떨어졌지? 몇일 전 성당 캠프에 다녀 온 아들의 배낭?
가슴이 쿵쾅거린다.
선배의 결혼식 축가를 부르러 가는 딸아이가 나가자마자
아들을 불렀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에이 복잡하게 둘러댈 것 없어.
"아들아! 엄마가 걱정이 생겼네."
"무슨 걱정요?"
"아- 저- 배란다에 그 뭐냐.. 콘돔이 있던데 너 그거 썼냐?"
"네? 엄만 무슨 말씀이세요?"
"엇그제 성당 아이들 캠프 때 여교사와는 아무 일 없었어?"
"엄만 아들을 어찌 보시고 그런 흉한 말씀을.."
"가만,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 그럼 누나와 아빠 중 누굴까?"
갑자기 머리가 더욱 띠하다.
딸아이를 먼저 알아보려니 아니라면 아빠만 들통나겠고
남편에게 먼저 말을 해 보려니 아니라면 그 도덕선생님 같은
아빠가 딸을 어찌 취급할까 염려되어 섣불리 알아보기 어렵다.
일단, 무거운 걸음으로 가게문을 열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고민 끝에 딸아이부터 알아보기로 생각을 굳히고
"누나 집에 오면 엄마 가게에 오라 해라."
전화를 하였더니 아들아이도 걱정스러운지
"엄마 잠깐만.. 이 문제 좀 보류해 봐요."
"왜?"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배낭 선배형이 준건데 그 날 처음 썼거든."
그 한마디에 헝클어졌던 마음은 좀 정리되어 갔지만
"그래도 누나 보내."
그렇게 밝고 명랑한 딸아이라면 어쩌나?
아이들 잘 자라주고 가정과 가게를 잘 꾸려주는 아내가 있어
무척 행복하다는 그 사람이면 어쩌나?
어느 누구라도 가엽고 안쓰러워 눈물이 난다.
행복하던 우리 가정을 이렇게 무너뜨렸으니 이제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척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별아별 생각의 끝을 다 잡고 있을 즈음 밝은 얼굴로 노래를
부르며 엄마에게 줄 떡까지 들고 딸아이가 나타났다.
"엄마! 쑥떡- 렌지에 데워 왔지요~"
"그래, 고맙다. 그건 거기 놓고..  엄마 지금 고민하고 있어."
"무슨 고민?"
"아침에 발코니에 풀어진 콘돔이 떨어져 있으니..."
"어- 그거? 내 껀데.."
"아니? 네 꺼 라니?"
"응 그거 학교에서 성교육 차원으로 하나씩 준건데
서랍 속에 있더라구. 버리려다가 갑자기 한 번 불어보고 싶어
펼쳐보니까 미끈덕거려서 비누로 빨아 빨래건조대에 말리려다
깜빡했네. 성당 캠프 가기 전이니까 몇 일 되었는데 귀여운
우리엄마! 그렇게 오래 맘 고생을 하셨어?"
"오늘 아침에 보았다니까. 그게 그렇게 된 일을..
너땜에 내가 못산다 정말.."
아무 정황을 모른 채 퇴근한 남편에게도 왠지 고마워서
"자- 오늘 저녁 외식은 내가 한턱 쏜다."
이렇게 하여 잠깐 흔들거리던 우리 가정의 행복이 고맙게도
제 자리를 찾아왔다.
아니, 이 사건으로 서로의 신뢰심이 더욱 단단하게 엮어졌다.
그런데 먹은 게 소화되지 않고 머리가 심하게 아픈 걸 보면
내가 바싹 신경을 쓰긴 했나보다. ^^

**
형님!
어제 평택문학 출판기념회가 있었는데
그 책 속에 이 꽁뜨도 넣어 웃음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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