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개키며

2004.11.22 23:29

강학희 조회 수:636 추천:21

오래전 단상을 올리며.

구멍난 양말 /강학희

빨래개키다
바닥에 구멍난 양말 한 켤레 보니
열 두 형제 양말 기웠다는 시누님 생각이난다
시조카와 동갑나기 남편은 그 중 열두 번 째

함지박 가득한 양말들 전구 끼워 밤새 기우면
신 새벽이 홰치고
나무 한 짐 지어다 무쇠 솥 보리 밥 익을 때면
우루루 나서는 더벅머리 동생들
땟국 전 발에 양말 신고 학교로 가버렸지

산떼미 같은 빨래들
시린 손 호호 불며 치대면
구멍만 숭숭 뚫리는 원수같은 무명 양말들
뚝딱 저녁 한 술 뜨고 양말들고 꾸벅이면
또 하루가 갔단다

큰 동생 미국 갔다 사온 귀한
나일론 양말들 아까워 품기만 하다
쌀 팔기 위해 도로 내 놓아야했지
물기 젖은 음성으로 하시던 말씀 생각나
구멍난 양말 차마 버리지 못하고 꿰맨다

다발로 사서 기계가 빠는 시대의 내 아이
이런 모진 세월 이해나 하려는지....
형제 우애가 구멍 구멍 메인 양말,
대물림의 나달한 책, 책가방, 헐렁한 교복
내 것이 아닌 우리 것

우리 것이 아닌 내 것만 가지고,
필요한 것만이 아닌 필요 없는 것까지
가지고 사는 세상에서
궁핍이 사랑으로 가는 길이란 걸,
함께 먹지 않으면 살이 되지 않는 사랑을
외 아들인 너에게 어찌 설명하랴
달랑 떨어뜨린 죄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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